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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글챌린지 소수자의 동화: 다수의 폭력인가, 숙명인가? - 박노자

"동화", "동화 정책"이라는 말을 하면 대개 한국인들에게 연상되는 것은 일제 말기의 소위 "민족 말살 정책" 같은 것입니다. "말살"이라는 말은 모종의 물리적인 폭력의 이미지를 짙게 띠고 있지만, "민족 말살"은 그것보다는 상징적 폭력, 즉 별도의 조선인으로서의 "아이덴티티"를 없앤다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그런 아이덴티티가 제거된, 야마모토 미노루 (박정희)나 가네야마 샤쿠겐 (김석원) 같은 조선계 일본 군인들은, 어쩌면 나름 "출세 가도"를 달릴 수도 있었습니다. 다만, 이 "출세"를 위해 지불해야 할 대가는 "대일본 제국 신민"뿐만 "내선일체"의 강제에 따라 아니라 광의의 "야마토 민족"의 구성원으로서의 새로운 자아 규정이었던 것입니다. 그렇게 스스로를 재규정하여 "반도인"에서 "완벽한 내지인"으로 스스로를 변모시킬 수 있는 사람들 역시 어디까지나 돈이나 학력이 있는 "소수"이었고 일본어를 끝내 배우지 못한 다수에게는 "동화 정책"이란 그저 징용, 징병, 징발, 각종 통제 등 식민지적 "폭력" 이상의 별다른 의미를 지니지 못했을 것입니다.

식민지적 폭력의 이미지가 짙어서 이제 "동화"라는 말의 사용을 대부분 꺼리지만, 사실 오늘날 대한민국의 국책의 일부로서의 "다문화 가정" 관련의 "사회 통합 정책"의 내용을 보면 동화 정책의 업데이트된 버전인가 싶은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사회 통합"이란 말은 분명 "동화 정책"보다 훨씬 좋게 들리지만, 그 정책의 현실적 내용이란 소수자들이 "한국인 되기"를 하는 것이지, 소수자들이 갖고 있는 문화, 언어 자원에 대한 보호나 육성 같은 게 아닙니다. 예컨대 베트남이나 필리핀 출신의 결혼 이민자들에게 "한국 예절 익히기"부터 "김장 담그기"까지 가르치는 것이 "사회 통합 정책"에 들어가고, 마을 도서관에 베트남어나 다갈로그어 책을 비치하는 것은 그 정책에는 대개 잘 없는 겁니다. 그러니까 한국 사회의 일종의 "내부 식민지"가 된 소수자들은 지금도 - 물론 일제말기와 비교 못할 정도로 "소프트"한 방식이지만 - 동화 압력을 계속 받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에 대한 동화 압력이란, 이미 기원전 4-3세기에, 헬레니즘 사회에서 시작된 것입니다. 일종의 고대판 세계화 시대인 헬레니즘 시대에는 그 당시의 영어 격인 희랍어 구사나 그 당시의 헬스 격인 - 주로 나체로 해야 했던 - 도시 공공 체육관에서의 체육, 그리고 개개인이 개인의 취향에 맞추어서 알아서 선택할 수 있는 여러 신에 대한 신앙 등 헬레니즘 사회 상류층이나 중산층의 입장에서는 유대인들의 "종래 신앙"의 고집이나 족내혼 고수, 성직자 본위의 사회 구성, 그리고 아람어 사용 등은 그저 폐쇄적이고 "비현대적"으로 보였을 뿐입니다. 헬레니즘 사회에서 유대인에 대한 시각은, 꼭 비교하자면 오늘날 유럽 사회가 갖고 있는 기본주의적 이슬람에 대한 편견을 방불케 할 정도이었습니다. 늘 그렇듯이 동화 압력에 가장 노출된 사람들은 바로 사회 지도층이나 유식층이었죠. 마카베오 반란 (기원전 167-160년)은 바로 "희랍화"라는 이름의 동화 압력에 대한 반발에서 비롯돼 시작됐지만, 그 반란의 결과로 권력을 잡은 하슈모나이 왕국 (기원전 140-37년)의 왕조나 귀족, 도시 상류층은 절처하게 헬레니즘 문화를 내면화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알렉산드리아의 대철학자 필론이나 로마의 유명한 사학자, 저술가가 된 플라비우스 요세푸스 등을 보면 "동화된 유대계 지식인"은 그 시대에 어떤 모습이었는지 쉽게 상상해 볼 수 있습니다. 한데 유대인 사회의 "근로 대중"들, 빈농이나 도시 빈민들은 여전히 희랍어 아닌 아람어를 사용했으며, 삶이 너무 고되게 되면 될 수록 <토라>에서 언급된 메시아의 왕림을 더 절실하게 기다렸습니다. 바로 그런, 동화될 위치에 있지도 않은 유대인 빈민들은 대개 예수의 제자, 즉 초기 기독교인 집단으로 몰린 겁니다. 단, 그들 중에서도 파울 등 어느 정도 로미 제국의 문화에 동화된 이들도 종종 보이긴 합니다.

중세 이후, 최근까지도 특히 종교적인 유대인들에게는 동화 (히트볼렐룯, התבוללות) 란 대체로 "배신", "배교"와 같은 의미로 통했습니다. 아직도 종교가 기본 구성 원리이었던 20세기 이전까지의 구미권 사회에서는 유대인의 동화란 기독교 세례를 받는 것을 기본 조건으로 했는데, 세례자가 나온 문중의 구성원들이 대개 그가 죽었다는 것처럼 생각하여 장례식인 것처럼 슬프게 통곡하곤 했습니다. 그런데 생각보다 "배교자"들이 그렇게까지 많지 않았습니다. 모든 가족들과의 완전한 절연이라는 것도, "개인"이 주로 "가족"의 일부분으로 기능했던 사회에서 그렇게 쉽지 않았지만, 특히 반유대주의가 종교뿐만 아닌 "인종" 배척의 문제가 된 1870-80년대 이후 아무리 "배교"해도 차별이 여전하다는 것은 "배교자"들의 쓰라린 경험이었습니다. 특히 파시즘이 유행하게 된 1930년대의 유럽에서는 "배교"나 "세례"는 더 이상 아무런 의미를 지니지 않았습니다. 유대인으로서의 기존의 정체성을 과감히 벗어나야 "일반적인 네달란드인"이 되고 "보편적인 인간"이 될 수 있었다고 믿었다가 결국 1940년 히틀러 군이 네덜란드를 점령하자마자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방법으로 파쇼들의 박해를 벗어나야 했던 네달란드의 온건 사회주의적 문필가인 루이스 플레스 (Louis Fles, 1872-1940)의 경우는 가장 전형적입니다.

정체성이라는 게 과연 뭘까요? 파시스트들이 유대인의 정체성이 "피"의 문제라고 생각했지만, 피, 즉 혈액은 민족별로 다를 리가 없습니다. 정체성을 유지시키고 세대간 전해주는 것은 바로 각종의 "제도"입니다. 교회 (유대교의 시나고그), 학교, 도서관, 언어 환경 등은 바로 정체성을 만들어주고 유지시키는 제도적 장치들입니다. 만약 이 장치들이 없어진다면? 이스라엘이 친미 노선을 걷게 되고 나서 스탈린은 1950-51년에 기존의 이디쉬어 학교 등 소련 유대인의 정체성을 유지시키는 제도적 장치들을 대부분 철폐시키고 말았습니다. 이디쉬어 극장이나 신문 등도 대부분 문 답고 나중에 흐루쇼브 시대에 유일하게 하나의 이디쉬어 문예잡지인 "소베티시 하임란드" ( סאָוועטיש היימלאַנד, <소비에트 조국>) 나왔지만, 그뿐이었습니다. 그렇다고 유대인 정체성은 과연 없어진 건가요? 언어적 정체성은 분명 거의 멸절됐습니다. 1980년대말에 이르러 이디쉬어를 기억하는 유대인들은 극소수에 속했습니다. 한데 그럼에도 정체성/소속감을 유지시켜온 것은 바로 다수자 사회의 반유대주의이었습니다. 계속 크고 작은 차별이나 모욕에 노출돼 있으면 본인이 원하지 않아도 일종의 소속감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피차별 집단의 구성원으로서의 소속감 말입니다.

동화가 국가나 다수자 집단의 폭력으로 요구되면 오히려 각종의 차별 등을 수반하는 그 폭력이야말로 피차별 소수자 집단의 결속을 역으로 더 강화시킬 수 있습니다. 결국 스탈린 이후 소련에서의 유대인에 대한 사실상의 강제 동화 정책의 결과란 유대인들의 집단 결집, 그리고 유대인 대부분의 이스라엘 내지 미국으로의 "대대적인 이민"뿐이었습니다. 한데 소수자에게 동화를 강요하지 않는 개방적인 현대적 다민족 국가에서 같으면 "동화"까지는 아니더라도 소수자 집단의 서서한 "희석화"는 아마도 "숙명"에 가깝습니다. 한국어보다 영어를 더 잘하고 메너 등도 상당히 미국적인 재미 한인 교민 2세를 봐도 알 수 있듯이, 다민족 사회에서의 소수자는 국가의 노골적 입력이 없어도 서열적인 위치가 더 높은 다수자들의 영어나 문화 등을 습득하게 돼 있습니다. 결국 몇 세대 동안 다민족 사회 속에서의 소수자들이 소수자-다수자 접경지대 (contact zone)에서 꽃피는 일종의 혼종적 문화를 생산하죠. 유대계 이민 2-3세인 솔 벨로나 필립 로스 같은 20세기 재미 유대인 문호들의 문학이야말로 그런 혼종적 문화의 좋은 사례일 겁니다. 그런데 2-3세의 경우 이질적인 문화 사이의 결합인 "혼종"을 이야기할 수 있지만, 예컨대 10세 정도 되면 과연 그 먼 조상이 러시아 제국에서 온 유대인이라는 사실을 어렵풋이 기억할까, 말까 하는 미국인들에게는 과연 다수자의 문화와 다른 모종의 "이질성"이라도 있을까요?

결국 민족/국민 국가로 이루어진 현대 세계에서는 "문화"나 "정체성"의 장기적 보존의 조건 중의 하나는 아마도 그런 민족 국가의 존재가 아닌가, 싶습니다. 디아스포라 소수자들에게는 그 종족적 "고국"이 중요한 이유도 결국 여기에 있을 겁니다. 한데, 유대인의 종족적 "고국"을 자임하는 이스라엘은, 만약 지금과 같은 팔레스타인인 배제, 차별, 탄압 정책을 계속 펴고, 오늘날과 같은 지노사이드 수준의 학살극을 계속 팔레스타인 땅에서 벌인다면, 저는 이스라엘과 유대인 디아스포라 관계가 장차 무난히 이루어질 수 없을 것이라고 봅니다. 유대인 디아스포라로서도 사실상 과거 남아공 아파르트헤이드 수준의 정책을 펴는 나라와 "관계"를 맺는다는 것은 적지 않는 부담이 아닐 수 없고 이 부담은 가면 갈수록 더 가중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출처] 소수자의 동화: 다수의 폭력인가, 숙명인가?|작성자 박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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