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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 독한 형사 <2장 8화 - 우리만이 할 수 있는 일>

1

 

1층에서 올라온 아파트 승강기가 15층에서 멈췄다.

열린 문 너머로 사람 한 명이 내렸다.

엘리베이터를 내린 승객이 하얀 비닐봉지를 들고 뚜벅뚜벅 길을 걸었다.

일렬로 쭉 뻗어진 복도를 따라 하염없이 걸었다.

한 중간쯤 왔을까? 현관문 앞에 선 승객의 오른손이 초인종으로 향했다.

1507호.

팻말에 적힌 호수를 확인한 후 주인이 나오길 기다렸다.

묵묵부답.

안에 사람이 있는 것은 확실한데 아무런 반응을 보이질 않자 의아하게 생각했다.

때 마침 문틈이 벌어진 것을 확인하곤 손잡이를 조심스럽게 돌렸다.

문을 열자 거실에 앉아있는 집주인의 모습이 보였다.

 

"재웅아…나 왔다…어우 이게 무슨 냄새야……."

 

온갖 악취가 날아들었다.

이재웅 형사의 집을 방문한 공 반장이 신발을 벗고 거실로 천천히 걸어간다.

인기척조차 없는 후배를 응시했다가 주변을 잠시 둘러보았다.

먹다 남은 술병들이 바닥에 널브러져 있다.

그는 바닥에 앉았다.

도무지 믿을 수 없다는 듯, 후배 얼굴을 빤히 바라봤다.

기름진 머리, 덥수룩한 수염, 초췌한 다크서클까지.

폐인이 다름없다.

저절로 한숨이 새어 나왔다. 몇 달째 병가를 내더니 한다는 게 고작 음주란 말인가?

 

"이럴 거 같아서…근처에서 죽 사 왔다…산 사람은 살아야지…간 맞췄으니까 함 먹어봐……."

 

플라스틱 그릇을 비닐봉지에서 끄집어내 탁자 위로 옮겼다.

뚜껑을 연 뒤 말을 이어갔다.

 

"흰 죽이야…폐인으로 사는 것도…먹으면서 해야지…인마……."

 

"……."

 

상대 겉모습에만 집중하느라 미처 알아채지 못한 부분이 있었으리.

바로 텔레비전 소리.

살짝 등을 돌려 브라운관을 응시했다.

아침 9시 뉴스가 한참 진행 중이다.

 

[그동안 일어났던 사건 중 가장 이슈가 되었던 일을 소개하는 시간이죠.

20대 후반 여성을 잔혹하게 망치로 가격해 살해한 사건…○○동 살인 사건에 관한 소식입니다…

피해자를 살해한 가해자 남○○씨가…….]

 

뉴스 캐스터의 말을 듣다가 도무지 참을 수 없었는지 곧장 리모컨을 빼앗아 TV를 껐다.

하루 종일 TV 뉴스만 보았을 후배 이재웅에게 한 마디 하려고 고개를 휙 돌렸다.

그런데 순간 이상했다.

정의하긴 어렵지만, 마치 목각 인형을 보는 것 같았다.

그는 한숨을 짧게 내쉬었다.

 

"재웅아…나도 네 심정 충분히 이해한다…내 와이프가 소개해 줬는데 어떻게 모르겠냐…

하지만 재웅아…이건 아니야…산 사람은 살아야지…우리가 살아야…

다시는 지윤씨 같은 피해자가 생기지 않지…제2, 제3의 피해자가 생기지 않게…그걸 막는 게…

우리잖냐…재웅아…재웅아…듣고 있냐?…야…인마!"

 

"…지는데……."

 

반쯤 접힌 허리.

무릎 위에 올린 두 팔.

푹 꺼진 고개.

그리고 들릴 듯 말 듯 울려 퍼지는 조그만 목소리.

 

"제2…제3의 피해자를…막으면…뭐가 달라지는데…그걸…막으면…뭐가 달라지냐고!

그런다고…죽은 지윤이가…살아 돌아와?…말해 봐…살아 돌아오냐고!"

 

목덜미에서 핏줄이 튀어나왔다.

양팔을 크게 휘저으며 거세게 반박했다.

공 반장은 고개를 숙였다.

그 말을 듣자 아무런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입을 다문 이재웅은 고개를 돌렸다.

더는 대화할 생각이 없다는 뜻.

 

“그래…내가 잘못했다…잘 추스르고 돌아와라…끼니 거르지 말고…….”

 

“…….”

 

“가기 전에 한 마디 할게. 지윤이가 지금 네 모습을 본다면 과연 마음이 편할까? 이게 떠나간 지윤이가 바라던 모습일까?

결정은 네 몫이겠지만…글쎄…난 모르겠다…그럼 갈게…….”

 

비거덕, 비거덕.

바닥에서 소리가 들렸다.

뒤돌아선 공 반장이 현관으로 가 신발을 신는다.

다시 혼자가 된 이재웅은, 술잔을 꿀꺽꿀꺽 들이켰다.

 

 

 

2

 

또 다시 몇 개월이 흘렀다.

본인이 사는 아파트 놀이터 앞에서 중년 부부를 만난 이재웅의 표정은 결코 밝지 않았다.

피부색은 칙칙했고 눈동자는 흐릿했다.

머리는 어깨까지 내려왔고 인중과 아래턱엔 수염이 나있었다.

중년 여성의 시선이 그에게 향했다.

커다란 바위를 짊어진 듯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재웅아…시간 내줘서 고마워…오늘 우리가 찾아온 이유는 줄 게 있어서 왔어…여보…….”

 

발 앞에 뒀던 상자를 가슴 높이만큼 들어 올린 뒤 그에게 건넸다. 건네받은 상자를 무릎 위에 올려놓고 뚜껑을 슬쩍 열었다.

재웅의 눈가가 촉촉해졌다.

 

덥석.

오른손을 내밀어 물건 한 개를 집어올렸다.

애니메이션 피규어였다.

 

“재혁이한테 줄까도 고민했는데…이 장난감들…그래도 네가 갖고 있는 게 좋을 것 같아서 갖고 왔어…우리보단 재웅이

네가 보관하는 게 더 어울릴 거 같아…….”

 

“어머님…아버님…크흐…흐흐…흡…….”

 

“괜찮아, 울어도 돼. 자네 운다고 뭐라 할 사람 아무도 없네…….”

 

재웅은 아랫입술을 꽉 깨물었다.

소리 없는 오열.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

 

“반장님이 찾아오셨어…네가 꼭 좀 현장에 돌아올 수 있게 해달라고 우리에게 간곡히 부탁하더라…재웅아…어디서 누가 말하더라…

사람은 사람으로 치유한다고…우린 네가 있어서 조금이나마 딸을 잃은 슬픔을…극복할 수 있었어…그러니까…

부디 용기를 갖고 다시 일해줬으면 하는구나…….”

 

상대방의 손을 덥석 잡으면서 말했다.

네가 있어야 할 곳으로 돌아오라고.

더는 어둠 속에서 혼자 살지 말라고.

태평양처럼 넓은 그의 어깨가 들썩거렸다.

머리를 숙이고 있어서 표정은 볼 수 없지만 울고 있다.

양손에 품은 피규어를 꼭 안은 채 울고 있다.

 

 

 

3

 

강력팀 전원이 회의실로 모여들었다.

공 반장은 머리를 박박 긁었다.

몇 달째 잡히지 않는 범인을 잡기 위해 모인 회의이거늘, 그렇다 할 진전이 없다.

그의 시선이 살짝 가라앉았다.

이럴 때 총명하고 행동도 재빠른 이재웅이 있었다면?

남명성은 턱을 괴었다.

세 시간째 이어지는 회의로 인해 벌써 얼굴은 녹초 상태.

 

“하…이럴 때 그 자식이 있었다면…….”

 

“재웅 선배 보고 싶네요…….”

 

“야…남명성, 정용희! 이것들이 형사라는 게 빠져서는…이럴 때일수록 더 머리를 굴려보란 말이야!”

 

“그럼 반장님은 뭐 떠오르는 거 있어요?”

 

“뭐…없지만…….”

 

남명성의 물음에 대답할 수 없었다.

저절로 양손이 옆구리로 향했다.

답답한지 90도로 고갤 숙인 후 한숨을 내쉬었다.

때 마침 들려온 노크 소리.

공 반장은 등을 돌렸다.

이 시간에 누구지?

손잡이를 돌려 살짝 바깥을 쳐다봤다.

그 순간, 귀신을 본 것처럼 뒷걸음질 치는 그.

점점 열리는 문.

그 안으로 들어오는 한 남성.

머리를 짧게 자르고, 수염을 깨끗이 깎은 이재웅 형사가 그곳에 있었다.

 

“하여간 나 없으면 일이 안 돌아가지? 참…아…됐고 이번엔 뭐야?”

 

어제 만난 것처럼 자연스럽게 남명성 옆에 가서 앉는 이재웅 형사.

남명성은 옆구리를 톡톡 건드렸다.

재웅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재웅! 인마…복귀하면 복귀한다고 귀띔이라도 하든가…자자…모두 박수…불곰 이재웅 형사의 복귀를 축하해 주자고!”

 

“선배…왜 이렇게 오래 걸렸어요! 아…얼마나 힘들었는지 알아요?”

 

“어쭈…막내가 빠져선 못 하는 말이 없네?”

 

오른팔로 정 순경 목을 꽉 안았다.

살려달라며 정 순경이 왼손을 내밀었다.

가슴을 툭툭 치면서 요구했다.

도로 자세를 바꾼 이재웅 형사가 씩 웃는다.

반대편에 있는 공 반장과 시선을 주고받았다.

공 반장은 고개를 주억거렸다.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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