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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리터리 6.25전쟁은 미국이 거의 양손 묶고 싸운거나 다름 없음

 

unnamed.png 6.25전쟁은 미국이 거의 양손 묶고 싸운거나 다름 없음
 

왼쪽부터 리지웨이, 벤플리트, 클라크

 

휴전협정에 서명 해야 했던 비운의 유엔군 사령관 클라크 장군은 휴전 30년 후인 1983년 미국의 소리(voice of america) 방송에 출현하여 다음과 같이 회고했다.

 

"유엔군은 거의 다 승리해 가는 입장이면서도 조기 휴전을 바라는 미국 국민과 유엔 일부 국가들의 요구에 밀린 워싱턴 당국이 증원군 파견과 만주 폭격을 주저하여 승부 없는 모양의 휴전으로 끝나고 말았다. 이 휴전은 특히 미군으로서는 전략 면에서 지극히 명예롭지 못한 결말이 아닐 수 없다. 만약 당시의 워싱턴 당국이 지상군 보병 2개 사단의 증파를 바라는 현지 미8군의 요청을 받아들이고, 맥아더 장군 때부터 금기사항으로 취급 당한 만주 폭격(원폭 포함)을 허가했다면 유엔군은 훌륭히 군사적 승리를 거두었을 것이다."

(실제 1950년 기준 미국은 369개의 핵을, 소련은 5개의 핵을 보유했음)

 

출처: 김정은의 할아버지, 김일성의 진실을 말하다, 김용삼 저, 미래사, 2018년, 25~256쪽

 

 

전시학자 로버트 레키는 1951년 6월 중순 공산군의 상태를 다음과 같이 요약하였다.

 

"전쟁 발발 후 일 년 동안 공산군은 대략 60만 명의 사상자(10만 명의 포로를 포함)를 내고 거의 궤멸지경에 이르렀다. 불과 8개월 만에 중공군은 약 50만 명의 손실을 입었다. 4월 및 5월 공세에서 중공군은 막대한 타격을 받았다. 5월 공세는 현대식 화력 앞에서 인해전술이 통할 수 없다는 사실을 여실히 입증하였다. 북한 전역은 폐허가 되었다. 철도망이 와해되고 병참선은 차단되었으며, 산업기반은 초토화되었다. 이제 모든 보급품은 소련에서 수송되었지만, 악몽과 같은 5월 공세는 이미 소련이 군수물자를 공급할 수 없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38선 북쪽에 대한 유엔군의 대대적 공세를 피하려고 안간힘을 쓰던 공산군은 전쟁을 중지할 준비가 되어 있는 것처럼 보였다. 야전군 지휘관들보다 워싱턴의 정책 결정자들은 추가적인 군사작전을 통한 한반도의 통일 달성에 부정적인 견해를 가지고 있었다. 제임스 밴 플리트 장군은 동부전선에서의 유리한 전세를 바탕으로 북한 전역을 석권할 전략을 수립했지만 합동참모본부는 그의 구상을 승인하지 않았다. 리지웨이 장군은 밴 플리트 장군에게 단지 유리한 지형을 점령할 수 있도록 부분적인 진격만 허용하였다. 당시 리지웨이 장군은 유엔군이 압록강까지 진격할 수도 있다고 확신 하고 있었다.

 

출처: 북한의 협상전략, 척 다운스 저, 송승종 옮김, 1999년, 57~59쪽  

 

욱이님1.JPG 6.25전쟁은 미국이 거의 양손 묶고 싸운거나 다름 없음

<중일전쟁>, <군벌전쟁>, <별들의 흑역사> 저자인 권성욱님 답변

 

 

 

결국 미국이 한국전쟁을 휴전으로 종결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미국이 군사력이 부족하거나 전쟁을 수행할 능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미국의 한국전쟁 수행 원칙이 소련과의 전면전을 수행할 준비를 충분히 갖출 때까지 소련이나 중공과의 충돌을 회피한다는 미국의 전략적 판단에 기인하고 있었다. 또 미국은 서유럽 중심의 세계전략을 수행해야 되기 때문에 한국에 미국의 군사력을 전부 투입할 수 없는 입장이었다. 따라서 미국은 중공군 개입 이후 전면전을 회피하면서 전쟁 이전상태의 회복이라는 최초 유엔의 정책목표에 기여할 수 있는 38도선 부근에서 명예로운 휴전만이 최선의 방책임을 깨닫게 되었다. 

 

출처: 미국은 왜 한국전쟁에서 휴전할 수밖에 없었을까, 남정옥 저, 한국학술정보, 2010년

 

 

요약

1. 이미 중공군은 5차 공세 때 병참과 공세능력에 한계가 왔고 화력에서 압도적으로 밀렸기에 미국이 각잡고 패면 밀렸을 거임

 

2. 그럼에도 무승부로 끝낸건 한국전쟁에 대한 미국 내 여론이 부정적인 점, 그리고 서유럽을 우선시 하는 미국의 외교정책 때문.

미국 육군 참모총장 브래들리도 "잘못된 장소에서 잘못된 적과의 잘못된 전쟁"이라 할 만큼 이 전쟁 승리를 굳이 할 생각이 없던게 이 당시 미국 정치인들 생각. 

 

 

 

비록 결과론적이긴 해도, 중국이 이렇게까지 미국을 위협할 만큼 성장하고 핵들고 설쳐대는 북한을 보면 미국 입장에서도 저때가 유일하게 미국 본토 걱정 없이 북한-중국 후드려 팰 마지막 기회였던거 같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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