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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칼럼 우루과이 축구의 레전드 앙헬 로마노에 관한 9가지 TMI[발롱도르~]

1. 프로필

 


생년월일: 1893년 8월 2일

포지션: 포워드, 레프트 윙, 골키퍼를 포함한 모든 포지션 
A매치 기록: 70경기 28골
신체조건: 키 174cm / 몸무게 73kg
주 소속팀: 클루브 나시오날

 



2. 로마노는 클럽과 국가대표팀을 합쳐 총 50개의 공식전인 우승 트로피를 쥐며 축구 역사상 가장 많은 트로피를 들었으며 클럽에서의 친선 대회까지 포함하면 60회의 우승을 이뤄냈다.
 

 

 

 

다니 아우베스가 가장 많은 트로피를 들었다고 알려진 이유는 앙헬 로마노가 우승했던 다수의 대회들이 현재는 폐지되었기 때문이며 당대 남미 축구에 대한 정보가 잘 알려지지 않아서 벌어진 일이다.

 


3. 앙헬 로마노는 골키퍼를 포함한 모든 포지션에서 뛸 수 있었다.

 

 

일부 포지션에서 사진이 다른 이유는 무엇일까?



개인이 선호하는 포지션은 오늘날의 왼쪽 공격형 미드필더나 왼쪽 처진 공격수인 인사이드 레프트나 레프트윙인 아웃사이드 레프트였지만 인사이드 라이트와 아웃사이드 라이트, 그리고 센터 포워드는 2-3-5 시스템의 풀백과 센터하프 및 좌우 윙하프도 뛸 수 있었음은 물론 골키퍼로도 뛸 수 있었고 실제로 종종 최전방 공격수를 볼 수 있었던 소속팀 동료 골키퍼 안드레스 마샬리와 포지션을 바꿔서 뛰기도 했다. 굴리트나 디 스테파노의 조상 격의 선수였던 셈이다.

 

골키퍼를 뛰는 로마노



4. 로마노는 클럽과 국가대표팀에서 모두 데뷔골을 득점했다.
 

 

1910년에 클루브 나시오날에서 센트랄을 상대로 데뷔 무대를 가졌는데 로마노는 해트트릭을 기록하며 기량을 선보였음에도 주전 경쟁에서 밀려나며 CA 페냐롤의 전신 구단이자 우루과이 축구의 아버지였던 선수 겸 지도자 존 할리가 있던 중앙 우루과이 철도 크리켓 클럽, 즉 오늘날의 CA 페냐롤에서 잠재력을 만개하며 리그 우승을 견인해 우루과이 국가대표팀에 뽑혔다.

1911년 8월 15일에는 우루과이 대표팀 소속으로 아르헨티나 대표팀과의 친선 경기인 코파 립톤에 나와 A매치에 데뷔했는데 데뷔전에서 데뷔골을 기록하며 조국의 2-0 승리를 거뒀다.

 

 

5. 클루브 나시오날로 다시 돌아왔다.
 

 

 

 

중앙 우루과이 철도 크리켓 클럽에서 성장한 뒤 잠시 아르헨티나 무대의 보카 주니어스로 이적했다가 친정팀 클루브 나시오날로 돌아왔으며 나시오날에서만 친선 대회를 포함해 34개의 대회에서 우승을 거두며 후배 엑토르 스카로네와 함께 구단 역사상 최고의 선수로 평가받았다.
 

 

6. 앙헬 로마노는 코파 아메리카 최다 우승 선수로 이름을 올리고 있다.
 

 

대회 단독 최다 우승자 로마노의 위엄 (출처: 위키피디아 영문)

 

 

우루과이 대표팀의 핵심 선수 앙헬 로마노는 원년 대회인 1916년 코파 아메리카부터 9번의 대회에 참가했으며 이중 1916년 대회, 1917년 대회, 1920년 대회, 1923년 대회, 1924년 대회, 1926년 대회에서 우승하며 총 6회 우승했다.

특히 1926년 대회를 제외한 나머지 5개 대회는 모두 주전으로 활약했으며 1917년 대회와 1920년 대회에서는 우승컵은 물론 득점왕을 수상하기도 했다.

앙헬 로마노 개인보다 우승 횟수가 많은 나라는 그의 조국 우루과이와 숙적 브라질, 그리고 아르헨티나뿐이다.

 

 

7. 앙헬 로마노는 올림픽 금메달 리스트다.
 

 

파리 올림픽 결승전에서 스위스 대표팀 선수와 경합하는 로마노

 

 

앙헬 로마노는 1924 파리 올림픽에서 우루과이 대표팀 주전 공격수로 참가하며 조국의 금메달을 이끌었으며 1라운드 유고슬라비아전과 8강 프랑스전, 그리고 결승전 스위스전에서 득점을 기록하며 조국의 우승에 공헌했다.
 

 

8. 앙헬 로마노는 유럽에서도 이름을 날렸다.

 

 

1925 클루브 나시오날의 유럽 투어 멤버

 

 

1925년, 로마노의 소속팀 클루브 나시오날의 라이벌 CA 페냐롤을 주축으로 창설한 우루과이 연합으로 인해 리그가 쪼개졌고, 이견차를 좁히지 못하여 우루과이 리그가 취소가 되자 클루브 나시오날은 운영비를 벌기 위해 유럽 투어를 다니며 유럽의 9개 나라를 돌아다니며 38개의 팀과 친선경기를 가졌다.

카탈루냐의 지배자 바르셀로나, 이탈리아의 챔피언 제노아, 포르투갈의 강자 스포르팅 리스본 및 중유럽 최고 수준의 클럽인 스파르타 프라하와 라피트 빈 등 여러 유럽팀과의 경기에서 26승 7무 5패의 성적을 거두었으며 여기서 앙헬 로마노는 대단한 퍼포먼스를 보여줬으며 특히 오스트리아 투어 당시에는 당시 오스트리아의 대통령 미하엘 하이니슈가 직접 맞아주기도 했다.

 

 

9. 앙헬 로마노는 축구 역사상 최초로 A매치 70경기를 달성한 선수로 이름을 남겼으며 한때 A매치 최다 출전자였다.
 

 

우루과이 축구협회의 기록 (출처: 우루과이 축구협회)

 

 

1911년 8월 15일에 아르헨티나와의 정기전인 코파 립톤에서 A매치에 데뷔해 데뷔골을 득점한 앙헬 로마노는 1927년 7월 14일에 아르헨티나와의 친선 컵대회인 코파 뉴턴에서 통산 마지막 A매치를 가졌는데 그 경기에서 당시 기준 역대 A매치 최다 출전 공동 1위였던 임레 쉬로서를 제치고 단독 A매치 최다 출장자에 올랐다.

우루과이 대표팀 A매치 최다 득점 타이틀도 가지고 있었지만 이 기록은 은퇴 이후에 후배 엑토르 스카로네에게 넘겨줬다.

 

 


이상 1920년대를 대표했던 멀티맨이자 당대 우루과이 축구의 황금기를 이끈 에이스 앙헬 로마노의 TMI를 마치겠다.

댓글 2

FCU회장 작성자 2023.03.13. 00:35
 A.C.Milan
멀티플레이어들 조상이죠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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