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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칼럼 1966년 세계 최고의 선수 (펠레를 제친 유럽의 왕)[발롱도르~]

안녕하세요, 축구 역사 매니아 레드 아카이브입니다. 

 

이번에 저와 같은 축구 역사 매니아이자 축구 블로거이신 토르난테님과 함께 대형 프로젝트를 합동으로 진행하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저희가 속한 크리에이터 팀, FCU의 이름을 걸고 연도별로 가상의 상을 시상하는 것입니다. 

 

과거에는 오늘날처럼 연도별 최고의 자리에게 주는 상이 많지 않았으며, 상이 있어도 당시에 상을 받은 선수들의 명예와 인지도가 오늘날까지 잘 이어져오지 않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또한 수상 결과에 대한 반론의 여지가 있어도 이를 재평가한 자료가 적어서 '과거에는 누가 최고였는가'와 같은 주제에 대한 토론이 이루어지기 어렵습니다. 

 

따라서 저희는 축구 역사를 연 단위로 끊어서 최고의 자리에 대해 재평가를 진행하고, 여러 부문에서 최고를 직접 선정해보기로 하였습니다. 

 

평가 부문은 연도별 최고의 선수, 최고의 감독, 특별상(최고의 골키퍼, 최고의 유망주, 최고의 수비형 플레이어, 최고의 플레이메이커, 최고의 공격수, 최고의 주장), 올해의 베스트 일레븐, 최고의 팀이며 최상위권의 순위와 후보 노미네이트까지 진행합니다. 

 

시작은 1950년부터이며, 하는 김에 2022년까지 쭉 진행할 예정입니다. 그 뒤에는 더 이전 시대에도 동일한 평가를 진행할 계획입니다. 

 

물론 저희 평가자 2인의 주관(축구를 보는 관점, 스타일에 대한 선호도 등)이 반영되었으며 각 평가자의 성향은 글 하단에 간략히 적어놓았습니다. 여러분들은 여러분 각자의 주관에 맞게 스스로 평가해보시면 분명히 좋은 경험이 될 것이고 저희도 그러한 의견 교환을 바라고 있습니다. 

 

연도별 최고의 선수는 두 평가자가 합동으로 평가하였고, 최고의 감독, 특별상, 올해의 베스트 일레븐은 토르난테님께서 맡아주셨고 최고의 팀은 제가 맡아서 선정하였습니다. 

 

또한 설명을 비롯한 아래의 본문은 토르난테님께서 작성하셨고 서문과 공유는 제가 전담하였습니다. 

 

그럼 즐거운 감상과 소통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열일곱번째는 1966년입니다. 

 

 

블로그 원문 

https://dongneazesoccer.tistory.com/m/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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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사항
 

1. 이 프로젝트는 티스토리 블로거이자 풋볼 크리에이터 연합(약칭 FCU) 소속 크리에이터 토르난테와 Red Archive가 공동으로 진행하는 컨텐츠입니다.

2. 선정기간의 기준은 추춘제 리그의 경우에는 1965-66 시즌을 기준으로, 춘추제 리그의 경우에는 1966 시즌으로 잡았으며 1966년에 열린 국제대회를 모두 포함했습니다.

3. 상위 10인 外 최고의 축구선수 노미네이트는 출생일 순서대로 정렬했습니다.

4. 골든 보이의 기준은 해당 년도 12월 31일 기준 만 21세 이하의 선수로 한정되었으며 오직 한 번만 수상할 수 있습니다.

5. TOTY는 토르난테 혼자 선정하고 순위는 레드 아카이브와의 합산 및 토의로 선정해서 상충하는 내용이 있을 수 있습니다.

 


1. 토르난테 & Red Archive 공동 선정, 1966년 최고의 축구선수
 

 

1966년 최고의 축구선수 최초 노미네이트 50인

 

 

 


공동 10위

 

 

 

이름: 우베 젤러
출생일: 1936년 11월 5일
국적: 서독
소속팀: 함부르크 SV

 

1966년 최고의 선수 공동 10위에 이름을 올린 첫 번째 선수는 한층 더 발전하며 활동영역을 파이널 서드에서 중원까지 넓힌 컴플리트 포워드 우베 젤러를 선정했다.

이전 시즌들과는 다르게 득점력은 확실히 저조했지만 플레이메이킹에 눈을 뜨며 경기영향력은 더 늘어난 젤러는 소속팀에서는 전력의 한계로 돋보이는 성적을 내진 못했지만 서독 대표팀에서는 팀을 월드컵 결승으로 인도하는 과정에서 2골 2도움을 기록했으며 소파 스코어가 채점한 평점에서는 7.83점을 받았다.

이런 활약을 바탕으로 젤러는 엘 그라피코가 선정한 대회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었으며 키커 랑리스테 평가에서는 월드클래스 등급을 받았다.

 

 

공동 10위

 

 

 

이름: 제프 허스트
출생일: 1941년 12월 8일
국적: 잉글랜드
소속팀: 웨스트햄 유나이티드

 

1966년 최고의 선수 공동 10위에 이름을 올린 두 번째 선수는 월드컵에서 해트트릭을 기록하며 우승에 공헌한 제프 허스트를 선정했다.

웨스트햄 유나이티드의 주포 허스트는 소속팀에서 정규리그 39경기 23골과 리그컵 10경기 11골을 포함해 59경기에 출전해 40골을 득점하는 괴력을 선보이며 캡틴 바비 무어를 제치고 웨스트햄 유나이티드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하며 삼사자 군단의 일원으로 승선했다.

1966 잉글랜드 월드컵에서는 원래는 지미 그리브스와 로저 헌트의 백업 멤버로 조별리그 내내 벤치를 달궜지만 그리브스의 부상으로 주전으로 도약하며 8강 아르헨티나전에서 결승골을 득점했고 4강 포르투갈전에서는 찰튼의 추가골을 어시스트하며 팀의 2-1 승리에 공헌했으며 결승전에서는 서독을 상대로 다소 논란이 있는 골을 포함해 해트트릭을 기록하며 4-2 역전승을 이뤄내며 소파스코어 기준 결승전 평점 9.8점을 받으며 양 팀 최고 평점을 기록했다.

 

 

공동 10위

 

 

 

이름: 지르세우 로페스
출생일: 1946년 9월 3일
국적: 브라질
소속팀: 크루제이루

 

1966년 최고의 선수 공동 10위에 이름을 올린 마지막 선수는 크루제이루의 3관왕 신화의 마침표를 제대로 찍은 공격형 미드필더 지르세우 로페스를 선정했다.

소속팀 크루제이루의 캄페오나투 미네이루 우승과 토르네오 미나스제라이스 우승을 이뤄내는데 기여했지만 토스탕에 이어 팀의 이인자라는 인식이 강했지만 브라질 전국리그 결승전에서는 브라질 무대에서 독주를 이뤄낸 펠레의 산투스를 상대로 맹활약을 펼쳤는데 1차전 크루제이루의 홈에서는 해트트릭을 기록하며 6-2 대승을 이뤄냈으며 2차전에서도 전반전에 2-0으로 밀리다가 후반전에 2-2로 따라잡은 상황에서 결승골을 득점하며 3-2 역전승을 이뤄내며 결승전에서만큼은 토스탕 이상의 활약을 펼치며 리우와 상파울루 연고 클럽들이 지배하던 브라질 축구무대에 신세력이 등장했음을 선포했다.
 

 

공동 8위

 

 

 

이름: 플로리안 알베르트
출생일: 1941년 9월 15일
국적: 헝가리
소속팀: 페렌츠바로시


1966년 최고의 선수 공동 8위에 이름을 올린 첫 번째 선수는 신 마자르 군단의 공격을 이끄는 쌍두마차 플로리안 알베르트를 선정했다.

비록 리그에서는 버셔시에서 우승컵을 내줬지만 버셔시에게 출전권을 양도받아 대신 출전한 유러피언 컵에서는 팀은 8강에서 탈락했지만 무려 7골을 득점하며 에우제비우와 함께 공동 득점왕에 올랐다.

헝가리 대표팀에서도 주전으로 활약하며 1966 잉글랜드 월드컵에 참가했는데 비록 공격포인트는 올리지 못했지만 세계 최강이라 불리는 브라질전에서는 상대 수비수를 교란하며 팀의 대승에 공헌했는데 이 승리 덕분에 브라질을 따돌리고 조별리그를 통과해 토너먼트에 진출할 수 있었고 그 공을 인정한 엘 그라피코와 에스타디오로부터 대회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었다.
 

 

공동 8위

 

 

 

이름: 페렌츠 베네
출생일: 1944년 12월 17일
국적: 헝가리
소속팀: 우이페슈티 도사


1966년 최고의 선수 공동 8위에 이름을 올린 마지막 선수는 신 마자르 군단의 공격을 이끄는 쌍두마차 페렌츠 베네를 선정했다.

소속팀 우이페슈티에서는 페렌츠바로시의 알베르트와 함께 넴제티 버이녹샤그에서 24골을 득점해 득점 공동 2위에 올랐으며 종합적인 클럽 활약은 알베르트에 미치지 못했지만 헝가리 대표팀에서는 압도적인 퍼포먼스를 선보였는데 1966 잉글랜드 월드컵 3조 첫 경기 포르투갈전에서는 동점골을 넣는 클러치를 보였지만 수비진이 주제 아우구스투를 막아내지 못하며 3-1로 아쉽게 패했으며 2차전에 만난 디펜딩 챔피언 브라질을 상대로는 선제골을 득점했음은 물론 토스탕에게 동점골을 내준 상황에서 파르카스의 골을 어시스트하며 3-1 대승을 이뤄내는데 큰 공을 세워 소파스코어 평점 9.3점을 받으며 양 팀을 통틀어 최다 평점을 받았다.

조별리그 마지막 경기 불가리아전에서도 1골 1도움을 기록하며 조별리그 통과를 도왔고 8강 소련전에서도 팀은 패했지만 베네는 만회골을 득점하며 분전했고 그 공을 인정받아 소파스코어 기준 대회 평점 8.3점을 기록하며 소파스코어를 포함해 여섯 개의 매체 중 네 개의 매체로부터 대회 베스트 11 선정되는 영예를 누렸다.
 

 

7위

 

 

 

이름: 알베르토 스펜세르
출생일: 1937년 12월 6일
국적: 에콰도르
소속팀: CA 페냐롤


1966년 최고의 선수 7위에는 오랜 슬럼프를 극복하고 다시 남미 무대의 왕으로 올라선 페냐롤의 왕 알베르트 스펜세르를 선정했다.

비록 정규리그에서는 여전히 전성기에 미치지 못하는 퍼포먼스를 보이며 우승을 클루브 나시오날에게 내줬지만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결승전에서는 드디어 과거의 폼을 되찾으며 결승 2차전에 역전골을 득점했지만 리버 플레이트의 오네가 형제의 활약으로 아쉽게 재역전당해 3차전 플레이오프로 몰렸으나 플레이오프에서는 만회골을 넣으며 2-2 동점의 기점을 마련했고 연장 12분에는 역전골을 득점하며 팀의 역전 우승을 이뤄냈다.

유럽 챔피언 레알 마드리드를 상대로는 그야말로 펄펄 날았는데 몬테비데오에서 열린 1차전에서는 멀티골을 득점했으며 산티아고 베르나베우에서 열린 2차전에서도 팀의 쐐기골을 득점하며 예예 군단의 추격의지를 꺾었다. 스펜세르는 1966년 한 해 동안 페냐롤에서 47경기에 출전해 30골을 득점했다.

 

 

6위

 

 

 

이름: 토스탕
출생일: 1947년 1월 25일
국적: 브라질
소속팀: 크루제이루

 

1966년 최고의 선수 6위에는 황제 펠레를 제치고 1966년 브라질 축구계의 천하통일을 이뤄낸 크루제이루의 왕 토스탕을 선정했다.

소속팀 크루제이루의 에이스로 군림하며 캄페오나투 미네이랑에서 20승 1무 1패라는 압도적인 성적으로 우승했으며 브라질 전국리그에서도 리우 데 자네이루 지역과 상 파울루 지역의 클럽들이 주도하던 브라질 축구계의 질서를 깨고 캄페오나투 카리오카를 제패했던 플루미넨시와 캄페오나투 파울리스타와 브라질 전국리그의 디펜딩 챔피언인 산투스를 모두 제압해 우승을 차지하며 브라질 축구계의 천하삼분지계를 이뤄냈다.

브라질 대표팀에서도 1966 잉글랜드 월드컵에 백업 멤버로 참가했으나 편파판정과 상대팀들의 폭력적인 수비로 인해 펠레를 잃는 악재로 인해 헝가리전에 선발 출전해 동점골을 넣었으나 결국 3-1로 패했고 이 패배로 인해 부상당한 펠레가 무리하게 선발 출전하면서 토스탕은 벤치에 앉았는데 이로 인해 브라질 대표팀은 포르투갈 전에서 대패하며 조별리그에서 탈락하는 수모를 당했다.
 

 

5위

 

 

 

이름: 페드로 로차
출생일: 1942년 12월 3일
국적: 우루과이
소속팀: CA 페냐롤


1966년 최고의 선수 5위에는 명실상부 페냐롤의 에이스로 팀의 남미 제패와 세계 제패를 이뤄내는데 큰 공을 세운 페드로 로차를 선정했다.

페르도 로차는 소속팀 페냐롤의 공격을 이끄는 플레이메이커인데 비록 리그 우승을 나시오날에게 내줬지만 코파 리베르타도레스에서 1차 조별리그에서 나시오날을 상대로 1차전에 4-0으로 대패했지만 조별리그 마지막 경기에서는 멀티골을 터트리며 3-0으로 대승하며 복수했고 2차 조별리그에서 다시 만난 나시오날을 상대로 해트트릭을 이뤄내며 3-0 승리를 이뤄내며 완벽하게 복수했다. 그리고 결승전에서도 리버 플레이트와의 결승 2차전에서는 선제골을 득점했지만 아쉽게 패했는데 3차전에서는 3-2로 앞선 상황에서 팀의 마지막 골을 득점하며 화룡점정을 찍어내며 대회 10골을 기록했고 인터콘티넨탈컵에서도 2차전에 선제골을 득점하며 유럽 챔피언 레알 마드리드를 제치고 소속팀 페냐롤을 세계 최강으로 올리는데 큰 공을 세웠다.

우루과이 대표팀에서도 1966 잉글랜드 월드컵에 참가해 팀의 공격을 이끌며 프랑스전 동점골을 득점하며 2-1 역전승에 기여하며 조별리그 통과를 이끌었으나 8강 서독전에서는 오심과 편파판정으로 인한 골 취소와 두 선수의 퇴장으로 인해 4-0 패배를 막지는 못했다.

 

 

4위

 

 

 

이름: 바비 무어
출생일: 1941년 4월 12일
국적: 잉글랜드
소속팀: 웨스트햄 유나이티드

 

1966년 최고의 선수 4위에는 삼사자 군단의 우승을 견인한 미래형 센터백 바비 무어를 선정했다.

1966 잉글랜드 월드컵에서는 강력한 리더십으로 팀을 아울렀음은 물론 빈틈없는 대인 수비와 정교한 롱킥을 앞세운 롱킥을 바탕으로 공격의 활로를 개척했는데 이 킥을 바탕으로 결승전에서 제프 허스트의 동점골과 팀의 네 번째 골을 어시스트하는 활약을 선보였다.

평점에서 불리한 수비수였음에도 소파스코어 평점 기준 7.98점을 받은 무어는 소파스코어 포함 대회 베스트 일레븐을 선정한 6개의 매체에서 모두 대회 베스트 일레븐으로 선정되는 영예를 누렸다.
 

 

3위 브론즈볼

 

 

 

이름: 프란츠 베켄바우어
출생일: 1945년 9월 11일
국적: 서독
소속팀: FC 바이에른 뮌헨

 

1966년 브론즈볼에는 찰튼마저 무력화시킨 압도적인 대인 수비 능력과 야신을 당황시킨 중거리 슈팅, 그리고 팀의 흐름을 쥐락펴락하는 약관의 천재 미드필더 프란츠 베켄바우어를 선정했다.

소속팀 바이에른 뮌헨에서는 센터백과 수비형 미드필더에서 뛰며 승격팀 바이에른의 분데스리가 3위와 DFB포칼 우승을 이뤄내는데 큰 역할을 한 프란츠 베켄바우어는 대표팀에서도 서독의 에이스로 활약하며 아군의 골대부터 상대의 골대까지 종횡무진 뛰어다니며 활약했는데 첫 경기 스위스전에서 수비형 미드필더로 뛰었음에도 멀티골을 득점하는 등 공수 양면에 걸쳐 완벽한 퍼포먼스를 보여주며 5-0 대승을 이뤄냈다.

토너먼트에서도 뛰어난 역량을 펼치며 우루과이전에서는 페드로 로차를 막아냄과 동시에 팀의 두 번째 골을 득점했으며 소련전에서도 야신의 완벽한 선방을 뚫어내고 팀의 두 번째 골을 득점하며 결승진출을 이끌었으며 결승전에서도 상대의 에이스 바비 찰튼을 완벽하게 지워냈지만 연장 혈투 끝에 아쉽게 패했다.

1966 잉글랜드 월드컵 신인상을 수상한 프란츠 베켄바우어는 소파스코어 평점 8.15점을 받으며 바비 무어보다도 높은 평점을 받았음은 물론 소파스코어 포함 베스트 일레븐을 선정한 6개 매체에서 모두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었음은 물론 키커 랑리스테 평가에서도 미드필더 부문 월드클래스 등급과 센터백 부분 인터내셔널 클래스 등급을 동시에 받았다.
 

 

2위 실버볼

 

 

 

이름: 바비 찰튼
출생일: 1937년 10월 11일
국적: 잉글랜드
소속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1966년 실버볼에는 경기장 넓은 지역을 왕성하게 뛰어다니며 영향력을 행사하며 조국의 월드컵 우승을 이뤄낸 에이스 바비 찰튼을 선정했다.

비록 찰튼의 소속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리그 4위에 그쳤지만 찰튼 개인은 유나이티드에서 공식전 54경기 18골을 기록하며 FWA 올해의 선수에 선정되며 사실상 리그 MVP를 수상했다.

잉글랜드 대표팀에서의 활약도 대단한데 1966 잉글랜드 월드컵에 참가해서 뛰어난 퍼포먼스를 보였는데 특히 준결승전에서는 브라질마저 떨어트린 돌풍의 팀 포르투갈을 상대로 멀티골을 득점하며 평점 9.5점을 받고 에우제비우를 제치고 양 팀 최고 평점을 받았으며 결승전에서는 베켄바우어와 함께 지워졌지만 베켄바우어를 잃은 서독은 공격전개에 어려움을 겪었고 결국 결승전에서도 승리에 간접적으로 기여하며 우승에 기여했다.

소파스코어 기준 평점 8.15점을 받았던 찰튼은 소파스코어 포함 6개 매체에서 모두 대회 베스트 일레븐으로 선정되었음은 물론 대회 MVP와 유럽 최우수 선수에게 주는 발롱도르도 수상했다.

 

 

1위 골든볼

 

 

 

이름: 에우제비우
출생일: 1942년 1월 25일
국적: 포르투갈
소속팀: SL 벤피카


대망의 1966 골든볼의 주인공을 두고 우리는 찰튼에게 유럽 최우수 선수상을 수상한 프랑스 풋볼과 다른 선택을 했다. 우리가 선정한 주인공은 드디어 펠레를 제친 에우제비우를 선정했다.

비록 1965-66 시즌에 에우제비우의 소속팀 벤피카는 리그 우승컵을 스포르팅 리스본에게 내주며 무관으로 끝냈지만 에우제비우 개인은 리그 23경기에 출전해 25골을 득점하며 득점왕을 차지했으며 유러피언 컵에서도 7골을 득점하며 득점왕에 올라 벤피카에서 공식전 30경기에 출전해 37골을 득점했다.

에우제비우는 특히 1966 잉글랜드 월드컵에서 대단한 활약을 펼쳤는데 헝가리전에는 아우구스트의 골을 어시스트했으며 불가리아전에는 직접 득점에 성공한데 이어 브라질전에는 멀티골을 넣으며 펠레 앞에서 완벽한 퍼포먼스를 보이며 평점 10점을 받았고 8강 북한전에서도 전반 초반에 3-0 패배 위기에 몰렸으나 포트트릭으로 조국을 구하며 평점 10점을 받고 4강에 진출했으며 4강전에서는 비록 패했지만 에우제비우 본인은 만회골을 득점했으며 3.4위전에서도 소련의 야신을 상대로 페널티킥을 득점했다.

소파스코어 기준 평점 8.8점을 받으며 사실상 대회 최고 평점자에 오른 에우제비우는 엘 그라피코를 제외한 나머지 다섯 개의 매체로부터 대회 베스트 일레븐에 올랐으며 대회 공식 득점왕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비록 월드컵에서 우승한 잉글랜드의 에이스는 찰튼이지만 1966년 한 해 가장 뛰어난 활약을 보여준 개인은 에우제비우라 생각한다.
 

 

상위 12인 外 최고의 축구선수 최종 노미네이트 18인
 

자우마 산투스 (브라질 / 파우메이라스)
훌리오 아바디에 (우루과이 / CA 페냐롤)
후안 호야 (페루 / CA 페냐롤)
마리우 콜루나 (포르투갈 / SL 벤피카)
고든 뱅크스 (잉글랜드 / 레스터 시티)
로저 헌트 (잉글랜드 / 리버풀 FC)
루이스 아라고네스 (스페인 /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헬무트 할러 (서독 / 볼로냐 FC)
아만시오 아마로 (스페인 / 레알 마드리드)
펠레 (브라질 / 산투스 FC)
지아친토 파케티 (이탈리아 / 인테르 밀란)
로베르토 페르푸모 (아르헨티나 / 라싱 클루브)
산드로 마촐라 (이탈리아 / 인테르 밀란)
안토니우 시몽이스 (포르투갈 / SL 벤피카)
라디슬라오 마수르키에비치 (우루과이 / CA 페냐롤)
호세 피리 (스페인 / 레알 마드리드)
다니엘 오네가 (아르헨티나 / 리버 플레이트)
앨런 볼 (잉글랜드 / 블랙풀)
 


2. 토르난테 선정 1966년 최고의 축구감독

 

골든 바통

 

 


이름: 알프 햄지
국적: 잉글랜드
소속팀: 잉글랜드 축구 국가대표팀
주 업적: 1966 잉글랜드 월드컵 우승

입스위치 타운에 이어 잉글랜드 대표팀을 성공적으로 지휘하며 줄리메 컵을 들어 올린 알프 램지를 올해 최고의 감독으로 선정했다.

축구에는 윙 포워드가 있어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빼고 윙 없는 4-1-3-2 시스템을 바탕으로 인사이드 포워드 및 중앙 미드필더에서 활약하던 찰튼, 피터스, 앨런 볼을 활용해 상대의 하프스페이스를 완벽하게 공략하며 우세를 점했다.

아르헨티나와 우루과이를 상대로 지지 않았으며 브라질마저 꺾은 포르투갈을 2-1로 완벽하게 꺾은 잉글랜드는 결승전에서도 서독을 상대로 다소 판정에 논란은 있었지만 4-2 역전승을 거두며 우승을 차지한 램지 감독은 잉글랜드 축구사에 한 획을 그었다.

 

 

실버 바통

 

 

 

이름: 아일톤 모레이라
국적: 브라질
소속팀: 크루제이루
주 업적: 1966 캄페오나투 미네이루 우승, 브라질 전국리그 우승, 토르네오 미나스제라이스 우승

지금까지 브라질 축구계는 가장 강력한 상 파울루 주의 캄페오나투 파울리스타와 두 번쨰로 강력하지만 가장 역사가 깊은 리우 데 자네이루 지역의 캄페오나투 카리오카가 브라질 축구의 헤게모니를 두고 다퉜으며 다른 주의 클럽들은 속칭 들러리에 머무르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미나스제라이스 주의 크루제이루를 이끄는 아일톤 모레이라는 이 질서에 제동을 걸었다. 주립 컵 대회에서 우승하고 캄페오나투 미네이루에서 압도적인 우승을 차지한 모레이라와 토스탕의 크루제이루는 전국 리그에서 리우의 명문 플루미넨시와 상 파울루주와 브라질 무대의 독재자인 펠레의 산투스를 꺾고 3관왕을 이뤄내며 브라질 축구계의 천하삼분지계를 썼다.
 

 

브론즈 바통

 

 

 

이름: 빅토르 마슬로프
국적: 소련
소속팀: 디나모 키이우
주 업적: 1966 소련 탑 리그 우승, 소비에트 컵 우승

1966년 세계 최고의 감독 3위에 오른 빅토르 마슬로프는 특유의 4-4-2 시스템을 바탕으로 전방에서부터 후방까지 강하게 상대를 견제하는 독특한 축구를 구사하는 축구를 구사하는데 마슬로프는 이를 두고 압박이라는 용어를 썼는데 이 압박 축구를 바탕으로 높은 수준의 무대인 소련 탑 리그와 소비에트 컵 우승을 이뤄냈다.

더 놀라운 것은 디나모 키이우의 선수 중 1966 잉글랜드 월드컵에 참가한 선수는 다섯이고  그중 주전으로 활약하는 선수는 레프트백 오스트로우스키와 수비형 미드필더 사보뿐이다. 키이우에는 레프 야신, 발레리 보로닌, 에두아르드 스트렐초프와 같은 화려한 스타는 없지만 마슬로프가 세운 실용적인 압박 시스템을 바탕으로 소련 무대를 통일했다.
 

 

상위 3인 外 최고의 축구감독 노미네이트

 

이름: 엘레니오 에레라
국적: 이탈리아
소속팀: 인테르 밀란
주 업적: 1965-66 세리에 A 우승 및 유러피언 컵 4강

이름: 빌 샹클리
국적: 스코틀랜드
소속팀: 리버풀 FC
주 업적: 1965-66 잉글랜드 풋볼 리그 1부 우승 및 채러티 실드 우승

이름: 헬무트 쇤
국적: 서독
소속팀: 서독 축구 국가대표팀
주 업적: 1966 잉글랜드 월드컵 준우승

이름: 로케 마스폴리
국적: 우루과이
소속팀: CA 페냐롤
주 업적: 1966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우승, 인터콘티넨탈컵 우승, 토르네오 콰드란굴라르 우승

이름: 미겔 무뇨스
국적: 스페인
소속팀: 레알 마드리드
주 업적: 1965-66 시즌 라리가 준우승 및 유러피언 컵 우승

이름: 명례현
국적: 북한
소속팀: 북한 축구 국가대표팀
주 업적: 1966 잉글랜드 월드컵 8강

이름: 후안 호세 피수티
국적: 아르헨티나
소속팀: 라싱 클루브
주 업적: 1966 아르헨티나 프리메라 디비시온 우승

 


3. 토르난테 선정 1966년 축구 특별상

 

토르난테 선정 골든 글러브

 

 

 

이름: 고든 뱅크스
출생일: 1937년 12월 30일
국적: 북아일랜드
소속팀: 레스터 시티


특유의 안정적인 선방과 화려한 동작 없이도 상대 공격수를 쉽게 무력화시키며 잉글랜드의 은행이라 불리며 삼사자 군단의 월드컵 우승을 이끈 숨은 공신 뱅크스가 야신의 독주 체제를 끊었다.

중소 규모의 레스터 시티에서 활약한 뱅크스는 삼사자 군단의 주전 골키퍼로 대회 우승을 이뤄냈으며 소파스코어를 제외한 나머지 다섯 매체로부터 모두 최우수 골키퍼로 선정되는 맹활약을 펼쳤다.

 

 

토르난테 선정 골든 보이

 

 

 

이름: 프란츠 베켄바우어
출생일: 1945년 9월 11일
국적: 서독
소속팀: FC 바이에른 뮌헨

 

상위 문단의 토르난테 & 레드 아카이브 선정 1966년 최우수 선수 항목 참조

 

 

토르난테 선정 골든 쉴드

 

 

 

이름: 바비 무어
출생일: 1941년 4월 12일
국적: 잉글랜드
소속팀: 웨스트햄 유나이티드


상위 문단의 토르난테 & 레드 아카이브 선정 1966년 최우수 선수 항목 참조

 

 

토르난테 선정 골든 렌즈

 

 

 

이름: 바비 찰튼
출생일: 1937년 10월 11일
국적: 잉글랜드
소속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상위 문단의 토르난테 & 레드 아카이브 선정 1966년 최우수 선수 항목 참조

 

 

토르난테 선정 골든 에로우

 

 

 

이름: 에우제비우
출생일: 1942년 1월 25일
국적: 포르투갈
소속팀: SL 벤피카


상위 문단의 토르난테 & 레드 아카이브 선정 1966년 최우수 선수 항목 참조
 

 

토르난테 선정 골든 암밴드

 

 

 

이름: 바비 무어
출생일: 1941년 4월 12일
국적: 잉글랜드
소속팀: 웨스트햄 유나이티드

 

축구 종가 잉글랜드는 역사적으로 항상 강력한 전력을 구성했음에도 클럽에서의 라이벌리가 타국에 비해 과해 대표팀의 조직력에도 영향을 미쳐서 조직력적인 측면에서 아쉬운 모습을 보인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웨스트햄의 주장 바비 무어는 대표팀에서도 강력한 카리스마로 팀을 아울렀으며 맨유의 주장 바비 찰튼과 리즈의 터줏대감 잭 찰튼 마저도 그를 리더로 인정하며 충실하게 따르게 했으며 조직력 문제가 사라진 잉글랜드 대표팀은 효율적이며 적절한 커버 플레이로 날개 없는 기적을 이뤄내는데 일조했다.

이 활약을 인정해 바비 무어를 1966년 축구계 최고의 주장으로 선정한다.

 


4. 토르난테 선정 1966 Team Of The Year

 

 

골키퍼

 

 

 

 

이름: 고든 뱅크스
출생일: 1937년 12월 30일
국적: 북아일랜드
소속팀: 레스터 시티

 

상위 문단의 토르난테 & 레드 아카이브 선정 1966년 특별상 문단 골든 글러브 항목 참조

 

 

센터백

 

 

 


이름: 로베르토 페르푸모
출생일: 1941년 10월 3일
국적: 아르헨티나
소속팀: 라싱 클루브


1966년 세계 최고의 센터백 한 자리는 아르헨티나의 수비 에이스 로베르토 페르푸모를 선정했다.

라싱 클루브와 아르헨티나의 수비라인의 리더인 페르푸모는 소속팀에서는 리그 최저실점을 앞세워 리그 우승을 이뤄내는데 일조했으며 국가를 대표해 나간 1966 잉글랜드 월드컵에서도 강력한 수비로 4경기에서 단 2실점만 내주는 짠물 수비를 이끌었음은 물론 페르푸모 개인도 7.45점이라는 수비수치고 우수한 평점을 받았다.

 

 

센터백

 

 

 

 

이름: 바비 무어
출생일: 1941년 4월 12일
국적: 잉글랜드
소속팀: 웨스트 햄 유나이티드


상위 문단의 토르난테 & 레드 아카이브 선정 1966년 최우수 선수 항목 참조

 


라이트백

 

 

 

 

이름: 자우마 산투스
출생일: 1929년 2월 27일
국적: 브라질
소속팀: 파우메이라스


1966년 세계 최고의 라이트백에는 천전노장 자우마 산투스를 선정했다.

비록 월드컵에서는 두 경기에 출전해 팀의 조별 리그 탈락을 막지 못했지만 자우마 산투스 개인은 평점 7.15점으로 준수했으며 소속팀 파우메이라스에서는 팀의 수비라인을 이끌며 리그에서 가장 적은 실점을 기록하며 산투스와 코린치안스의 추격을 따돌리고 상 파울루 주의 패자로 올라서는데 큰 공을 세웠다.

 

 

레프트백

 

 

 

 

이름: 지아친토 파케티
출생일: 1942년 7월 18일
국적: 이탈리아
소속팀: 인테르 밀란


1966년 세계 최고의 레프트백에는 네라주리 군단에서 한층 더 비중이 커진 지아친토 파케티를 선정했다.

파케티의 소속팀 인테르는 기본적으로 낮은 라인과 최전방 공격수의 부진에도 불구하고 70득점으로 리그에서 가장 많은 득점을 기록하며 스쿠테토를 따냈는데 이 과정에서는 대인 수비와 오버래핑 후 득점 찬스를 만드는 부분은 물론 직접 득점에도 능한 파케티의 덕이 컸다. 파케티는 수비수임에도 불구하고 세리에 A에서 32경기에 출전해 10골을 기록했으며 시즌 통산 38경기에 출전해 12골을 기록했다. 비록 월드컵에서는 소련과 북한으로부터 조국의 패배를 막아내지 못했지만 클럽에서의 활약으로도 파케티는 충분히 세계 최고의 레프트백이라 할 수 있겠다.

 

 

인콘트리스타

 

 

 

 

이름: 프란츠 베켄바우어
출생일: 1945년 9월 11일
국적: 서독
소속팀: FC 바이에른 뮌헨

 

상위 문단의 토르난테 & 레드 아카이브 선정 1966년 최우수 선수 항목 참조
 

 

플레이메이커

 

 

 

 

이름: 바비 찰튼
출생일: 1937년 10월 11일
국적: 잉글랜드
소속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상위 문단의 토르난테 & 레드 아카이브 선정 1966년 최우수 선수 항목 참조

 

 

라이트윙 포워드

 

 

 

 

이름: 페렌츠 베네
출생일: 1944년 12월 17일
국적: 헝가리
소속팀: 우이페슈티 도사

 

상위 문단의 토르난테 & 레드 아카이브 선정 1966년 최우수 선수 항목 참조

 

 

레프트윙 포워드

 

 

 

 

이름: 후안 호야
출생일: 1934년 2월 25일
국적: 페루
소속팀: CA 페냐롤


1966년 세계 최고의 레프트윙 포워드에는 페루 출신 페냐롤 좌측의 믿을맨 후안 호야를 선정했다.

호야는 코파 리베리타도레스 결승전에서 리버 플레이트와의 결승 1차전 추가골을 포함해 총 5골을 득점하며 소속팀을 남미 챔피언으로 올렸음은 물론 인터콘티넨탈컵에서도 레알 마드리드의 오른쪽을 완벽하게 공략하며 우승에 일조했다.

 

 

센터 포워드

 

 

 

 

이름: 에우제비우
출생일: 1942년 1월 25일
국적: 포르투갈
소속팀: SL 벤피카

상위 문단의 토르난테 & 레드 아카이브 선정 1966년 최우수 선수 항목 참조

 

 

센터 포워드

 

 

 

 

이름: 알베르토 스펜세르
출생일: 1937년 12월 6일
국적: 에콰도르
소속팀: CA 페냐롤

 

상위 문단의 토르난테 & 레드 아카이브 선정 1966년 최우수 선수 항목 참조

 

 

1966 TOTY 베스트 일레븐

 

 

 

 

 


5. Red Archive 선정 1966년 세계 최고의 축구팀

 

1위 골든 팀

 

 

 

 

크루제이루
 

성적: 1966 캄페오나투 미네이루 우승, 브라질 전국리그 우승, 토르네오 미나스제라이스 우승

주립리그인 캄페오나투 미네이루와 주립 컵 대회인 토르네오 미나스제라이스, 그리고 전국리그인 타사 브라질까지 모두 제패하며 3관왕을 달성했다. 캄페오나투 미네이루에서의 페이스는 그야말로 압도적으로, 22경기에서 20승 1무 1패라는 경이로운 성적을 거두며 미나스제라이스 주를 제패했다.

주립 대회에서 압도적인 모습을 보여준 크루제이루의 신화는 이제 시작이었는데 타사 브라질에서는 전국의 강팀들을 상대로 8경기 7승 1무라는 무시무시한 전적을 자랑했으며 브라질 무대를 독주하던 산투스를 상대로 1차전에 6-2 대승을 거뒀으며, 2차전에서도 3-2로 신승하며 총합 9-4라는 압도적인 점수차로 우승컵을 들며 리우 데 자네이루와 상 파울루가 중심이었던 브라질 축구계의 판도에 새로운 변화를 가져왔다.

 

2위 실버 팀

 

 

 

 

CA 페냐롤
 

성적: 1966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우승, 인터콘티넨탈컵 우승, 토르네오 콰드란굴라르 우승

비록 정규리그에서는 라이벌 나시오날에게 우승을 내주었지만, 코파 리베르타도레스에서는 결승전에서 리버 플레이트와의 혈투 끝에 눈물겨운 우승을 차지했으며 이것은 페냐롤의 대회 통산 3번째 우승이었다. 인터콘티넨탈 컵에서는 마찬가지로 유로피언 컵 최다 우승 팀이자 해당 시즌 우승팀인 유럽의 왕 레알 마드리드를 만났는데, 1차전과 2차전을 모두 2-0으로 승리하며 합산 스코어 4-0으로 우승을 차지했다.

 

 

3위 브론즈 팀

 

 

 

 

레알 마드리드

 

성적: 1965-66 시즌 라리가 준우승 및 유러피언 컵 우승

라리가에서는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에게 승점 1점 차로 밀리며 2위에 만족해야 했지만, 유로피언 컵에서는 안더레흐트,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 파르티잔을 차례로 격파하고 통산 6번째 우승을 차지하며 스페인 선수들을 주축으로 한 예-예 마드리드의 위력을 온 대륙에 알렸다.

 


6. 평가자 소개

 

1. 토르난테


해당 블로그의 주인이자 F.C.U의 회장으로 축구역사 매니아, 중부 유럽과 남부 유럽 그리고 동부 유럽 축구에 관심이 많다.

선수와 감독을 평가하는 부분에서 전술적 상징성과 최고점에서의 퍼포먼스를 굉장히 중시하는 성향

응원팀: 바이에른 뮌헨, 인테르 밀란, 디나모 키이우
 

 

 

2. Red Archive


F.C.U의 회원으로 축구역사 매니아, 특히 남미 축구에 관심이 많다.

선수와 감독을 평가하는 부분에서 토르난테에 비해 상징성보다는 어빌리티에서 더 섬세하게 평가하는 성향

응원팀: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CA 인데펜디엔테, 아스날
 

 


7. 추도사 및 헌사

 

1950년대 최고의 축구선수들인 알프레도 디 스테파노와 페렌츠 푸스카스가 1965-66 시즌이 종료된 후 현역에서 은퇴했습니다.

페렌치 푸스카스는 매직 마자르 군단을 이끌고 축구 역사상 최고의 국가대표팀으로 군림했으며 알프레도 디 스테파노는 레알 마드리드의 저승사자 군단 시절에 유럽무대를 제패하며 클럽 축구 역사에 새 지표를 열었습니다.

그리고 두 영웅들은 20년 가까이 높은 수준의 기량을 유지하며 오랜 시간 팬들의 지지를 받았습니다. 이제 그들의 시대는 끝났지만 그들이 이뤄낸 업적은 축구 역사에 영원히 남아 후세의 팬들에게도 큰 귀감이 될 것입니다. 그동안 수고하셨습니다.
 

 

 



1966년 12월 26일, 아르헨티나를 대표하는 명장 기예르모 스타빌레가 향년 61세의 나이로 사망했습니다.

고인은 선수시절 초대 월드컵 득점왕으로 커리어를 남겼으며 감독시절에는 조국 아르헨티나 대표팀의 지휘봉을 20년 넘게 잡으며 코파 아메리카 6회 우승이라는 대업을 이뤄냈으며 클럽팀 라싱 클루브의 감독도 겸직하며 아르헨티나 프리메라 디비시온 3연패를 이뤄내며 클럽과 대표팀 양 쪽에 큰 족적을 남기며 아르헨티나 축구계의 발전에 힘썼으며 감독직을 은퇴한 이후에는 아르헨티나 축구의 발전을 위해 지도자 후학들을 양성하다 그만 세상을 떠났습니다.

아르헨티나는 물론 전 세계의 축구 팬들은 당신이 아르헨티나 축구에 끼친 업적을 영원히 기억할 것입니다. 이제 편히 쉬시길.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추천은 힘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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