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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칼럼 1970년 세계 최고의 선수[발롱도르~]

안녕하세요, 축구 역사 매니아 레드 아카이브입니다. 

 

이번에 저와 같은 축구 역사 매니아이자 축구 블로거이신 토르난테님과 함께 대형 프로젝트를 합동으로 진행하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저희가 속한 크리에이터 팀, FCU의 이름을 걸고 연도별로 가상의 상을 시상하는 것입니다. 

 

과거에는 오늘날처럼 연도별 최고의 자리에게 주는 상이 많지 않았으며, 상이 있어도 당시에 상을 받은 선수들의 명예와 인지도가 오늘날까지 잘 이어져오지 않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또한 수상 결과에 대한 반론의 여지가 있어도 이를 재평가한 자료가 적어서 '과거에는 누가 최고였는가'와 같은 주제에 대한 토론이 이루어지기 어렵습니다. 

 

따라서 저희는 축구 역사를 연 단위로 끊어서 최고의 자리에 대해 재평가를 진행하고, 여러 부문에서 최고를 직접 선정해보기로 하였습니다. 

 

평가 부문은 연도별 최고의 선수, 최고의 감독, 특별상(최고의 골키퍼, 최고의 유망주, 최고의 수비형 플레이어, 최고의 플레이메이커, 최고의 공격수, 최고의 주장), 올해의 베스트 일레븐, 최고의 팀이며 최상위권의 순위와 후보 노미네이트까지 진행합니다. 

 

시작은 1950년부터이며, 하는 김에 2022년까지 쭉 진행할 예정입니다. 그 뒤에는 더 이전 시대에도 동일한 평가를 진행할 계획입니다. 

 

물론 저희 평가자 2인의 주관(축구를 보는 관점, 스타일에 대한 선호도 등)이 반영되었으며 각 평가자의 성향은 글 하단에 간략히 적어놓았습니다. 여러분들은 여러분 각자의 주관에 맞게 스스로 평가해보시면 분명히 좋은 경험이 될 것이고 저희도 그러한 의견 교환을 바라고 있습니다. 

 

연도별 최고의 선수는 두 평가자가 합동으로 평가하였고, 최고의 감독, 특별상, 올해의 베스트 일레븐은 토르난테님께서 맡아주셨고 최고의 팀은 제가 맡아서 선정하였습니다. 

 

또한 설명을 비롯한 아래의 본문은 토르난테님께서 작성하셨고 서문과 공유는 제가 전담하였습니다. 

 

그럼 즐거운 감상과 소통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스물한번째는 1970년입니다. 

 

 

블로그 원문 

https://dongneazesoccer.tistory.com/m/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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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사항
 

1. 이 프로젝트는 티스토리 블로거이자 풋볼 크리에이터 연합(약칭 FCU) 소속 크리에이터 토르난테와 Red Archive가 공동으로 진행하는 컨텐츠입니다.

2. 선정기간의 기준은 추춘제 리그의 경우에는 1969-70 시즌을 기준으로, 춘추제 리그의 경우에는 1970 시즌으로 잡았으며 1970년에 열린 국제대회를 모두 포함했습니다.

3. 상위 10인 外 최고의 축구선수 노미네이트는 출생일 순서대로 정렬했습니다.

4. 골든 보이의 기준은 해당 년도 12월 31일 기준 만 21세 이하의 선수로 한정되었으며 오직 한 번만 수상할 수 있습니다.

5. TOTY는 토르난테 혼자 선정하고 순위는 레드 아카이브와의 합산 및 토의로 선정해서 상충하는 내용이 있을 수 있습니다.

 


1. 토르난테 & Red Archive 공동 선정, 1970년 최고의 축구선수
 

 

1970년 최고의 축구선수 최초 노미네이트 50인

 

 

 

 


공동 10위

 

 

 

이름: 우베 젤러
출생일: 1936년 11월 5일
국적: 서독
소속팀: 함부르크 SV

 

1970년 최고의 선수 공동 10위는 무려 네 명이 나왔는데 첫 번째 선수는 공격형 미드필더에서도 정점의 기량을 펼치며 독일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한 우베 젤러를 선정했다.

공격형 미드필더와 처진 공격수 포지션에서도 절륜한 플레이메이킹을 보여준 '우리들의 우베'는 1969-70 시즌 분데스리가 30경기에 출전해 17골을 득점하는 활약을 보여주며 키커지 선정 분데스리가 시즌 베스트 일레븐에 들었다.

멕시코 월드컵에서도 서독의 대표로 출전해 게르트 뮐러와 환상의 호흡을 보여주며 3골 3도움을 기록하며 소파스코어 기준 평점 7.81점을 기록하며 클럽에서의 출중한 활약에 대표팀에서의 뛰어난 퍼포먼스가 더해지며 후반기 키커 랑리스테 평가에서 베켄바우어, 오베라트와 함께 월드클래스 등급을 수여받았다.

 

 

공동 10위

 

 

 

이름: 볼프강 오베라트
출생일: 1943년 9월 29일
국적: 서독
소속팀: FC 쾰른

 

1970년 최고의 선수 공동 10위에 선정된 두 번째 선수는 폭넓은 범위에서 엄청난 영향력을 끼치는 왼발의 마법사 볼프강 오베라트를 선정했다.

우베 젤러와 함께 서독 대표팀의 플레이메이킹을 도맡았던 오베라트는 소속팀 쾰른에서 29경기에 출전해 12골을 득점하는 뛰어난 활약을 펼치며 키커지 선정 분데스리가 시즌 베스트 일레븐에 들었으며 1970 멕시코 월드컵에서도 무려 24회의 찬스 메이킹을 만들면서 해당 대회에서 펠레 다음으로 많은 찬스 메이킹을 만들며 조국의 월드컵 준결승 진출에 크게 기여했다.

볼프강 오베라트는 1969-70 시즌 전반기에는 키커 랑리스테 평가 미드필더 부문에서 월드클래스 등급 1위를 차지했으며 베켄바우어가 미드필더로 돌아온 후반기에도 월드클래스 등급 2위를 기록했다.

 

 

공동 10위

 

 

 

이름: 카를루스 아우베르투
출생일: 1944년 7월 17일
국적: 브라질
소속팀: 산투스 FC

 

1970년 최고의 선수 공동 10위에 선정된 세 번째 선수는 1970 멕시코 월드컵의 피날레를 장식하는 화려한 득점을 기록한 라이트백 카를루스 아우베르투를 선정했다.

산투스에서 좋은 모습을 보인 아우베르투는 1970 멕시코 월드컵에서도 주장으로 참여해 팀원들을 적극 독려했음은 물론 개인의 퍼포먼스도 대단해 조국의 우승에 큰 힘이 되었다.

아우베르투는 1970 멕시코 월드컵 베스트 일레븐을 선정한 ESPN 데포르테스와 캐스트롤 인덱스, 그리고 소파스코어로부터 모두 대회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는 영예를 누렸다.

 

 

공동 10위

 

 

 

이름: 호베르투 히벨리누
출생일: 1946년 1월 1일
국적: 브라질
소속팀: SC 코린치안스

 

1970년 최고의 선수 공동 10위에 선정된 마지막 선수는 코린치안스의 펠레, 왼발의 펠레라 불리는 브라질 축구계 차세대 슈퍼스타 호베르투 히벨리누를 선정했다.

특히 원자폭탄 킥이라 불리는 강력한 왼발 프리킥으로 이름을 날린 히벨리누는 소속팀 코린치안스에서도 에이스로 활약했음은 물론 브라질 대표팀에서도 왼쪽 윙어 겸 공격형 미드필더 포지션에서 중앙과 측면을 오가며 상대를 교란하며 2골 4도움을 기록해 월드컵 우승에 기여했다.

소파스코어 기준 1970 멕시코 월드컵 평점 3위에 오른 호베르투 히벨리누는 소파스코어, 캐스트롤 인덱스, 그리고 ESPN으로부터 모두 대회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는 영예를 누렸다.
 

 

9위

 

 

 

이름: 빌럼 반 하네엄
출생일: 1944년 2월 20일
국적: 네덜란드
소속팀: 페예노르트

 

1969년 최고의 선수 10위에는 네덜란드의 독재자 아약스를 끌어내리고 페예노르트의 더블을 이끈 명 플레이메이커 빌럼 반 하네엄을 선정했다.

중앙 미드필더였음에도 에레데비시 31경기에 출전해 14골을 득점했음은 물론 오베 킨드발과 코엔 물린 같은 공격수들에게 양질의 패스를 공급하며 팀의 공격을 이끌었다. 요한 크루이프와 라이벌리는 네덜란드 전역을 들썩이게 했다.


 

 

공동 7위

 

 

 

이름: 토스탕
출생일: 1947년 1월 25일
국적: 브라질
소속팀: 크루제이루


1970년 최고의 선수 공동 7위 첫 번째에는 하얀 펠레, 셀레상의 부왕이라 불리는 펠레의 후계자 토스탕을 선정했다.

비록 소속팀 크루제이루에서는 캄페오나투 미네이랑 우승에 실패했지만 전국리그에서의 뛰어난 활약으로 대회 득점왕과 대회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었음은 물론 브라질 대표팀으로 나간 1970 멕시코 월드컵에서도 8강 페루전에서 2골 1도움을 기록하며 평점 10점을 기록했고 4강 우루과이전에서도 2도움을 기록하는 등 뛰어난 활약을 펼치며 우승에 기여했다.
 

 

공동 7위

 

 

 

이름: 테오필로 쿠비야스
출생일: 1949년 3월 8일
국적: 페루
소속팀: 알리안사 리마


1970년 최고의 선수 공동 7위 마지막에는 페루의 천재이자 월드컵 신인상 수상자 테오필로 쿠비야스를 선정했다.

소속팀 알리안사 리마에서 페루 프리메라 디비시온 득점왕에 오른 쿠비야스는 1970 멕시코 월드컵에서도 대표팀의 핵심 플레이메이커로 조국의 8강 진출에 기여했는데 그 과정에서 모로코를 상대로 2골 1도움을 기록하며 평점 10점을 받는 괴력을 토했으며 최강 브라질을 상대로도 주눅들지 않고 득점을 기록하며 좋은 퍼포먼스를 보여 대회 신인상을 수상했음은 물론 캐스트롤 인덱스와 소파스코어 선정 대회 베스트 일레븐에도 선정되었다.

 

 

6위

 

 

 

이름: 루이지 리바
출생일: 1944년 11월 7일
국적: 이탈리아
소속팀: 칼리아리 칼치오

 

1970년 최고의 선수 6위에는 칼리아리의 왕이자 아주리의 해결사 천둥번개 루이지 리바를 선정했다.

벼락과 같은 스피드를 바탕으로 중앙과 좌측면에서 모두 엄청난 득점력을 자랑했던 리바는 해당 시즌 군소팀 칼리아리의 기적적인 세리에 A 우승을 이뤄냈음은 물론 리바 개인도 세리에 A 득점왕에게 수상하는 카포칸노니에레를 수상했다.

아주리에서도 펠레의 라이벌로 주목받았는데 비록 조별 리그에서는 득점을 하지 못했지만 8강 멕시코전 멀티골 및 준결승 서독전 득점으로 결승 진출에 공헌하며 대회 평점 7.5점을 받아 팀의 에이스로 조국의 월드컵 준우승을 이뤄냈다.

 

 

5위

 

 

 

이름: 자이르지뉴
출생일: 1944년 12월 25일
국적: 브라질
소속팀: 보나포구


1970년 최고의 선수 5위에는 월드컵 전 경기에서 득점을 기록하며 월드컵 폭풍이라 불렸던 자이르지뉴를 선정했다.

소속팀 보타포구에서는 뛰어난 기량을 보였음에도 가시적인 성과를 내지 못한 자이르지뉴는 월드컵에서는 괴력을 발휘하며 6경기 7골 1도움을 기록하며 조국의 우승에 큰 공을 세웠음은 물론 개인적으로도 소파스코어 기준 평점 8.27점으로 대회 4위에 올랐으며 3개의 매체에서 모두 대회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는 영예를 누렸다.

 

 

4위

 

 

 

이름: 프란츠 베켄바우어
출생일: 1945년 9월 11일
국적: 서독
소속팀: FC 바이에른 뮌헨

 

1970년 최고의 선수 4위에는 준결승전에서 쇄골이 부상당하는 중상을 입었음에도 초인적인 퍼포먼스로 연장 후반까지 풀타임을 소화한 신화적인 미드필더 베켄바우어를 선정했다.

소속팀 바이에른 뮌헨에서 뛰어난 활약을 선보이며 전반기에는 센터백으로 월드클래스 등급을, 후반기에는 미드필더와 센터백으로 모두 월드클래스 등급을 받은 프란츠 베켄바우어는 서독 대표팀에서도 팀의 에이스로 활약하며 조국의 준결승 진출 과정에서 큰 공을 세우며 소파스코어 기준 평점 8.06으로 대회 6위를 기록했으며 ESPN과 소파스코어 선정 대회 베스트 일레븐으로 선정되었다.

그의 영향력을 증명하는 경기는 세기의 매치라 불리는 이탈리아와의 준결승전인데 그가 부상을 당하기 전까지는 서독이 이탈리아를 압도했으나 그가 쇄골부상을 당한 이후에는 서독은 역전패를 기록했다. 물론 베켄바우어는 그 부상 속에서도 경기장을 이탈하지 않고 계속 경기장에 남았을 정도로 경이로운 정신력을 보였다.
 

 

3위 브론즈볼

 

 

 

이름: 지르송
출생일: 1941년 1월 11일
국적: 브라질
소속팀: 상 파울루

 

1970년 브론즈볼에는 황금의 왼발이라 불리는 셀레상 굴지의 중원사령관 지르송을 선정했다.

소속팀 상파울루에서는 팀의 캄페오나투 파울리스타 우승을 이끌었으며 1970 멕시코 월드컵에서 브라질 대표팀 소속으로 조국의 우승을 이끌어 펠레 다음가는 활약을 보였음은 물론 ESPN과 소파스코어로부터 대회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었다.
 

 

2위 실버볼

 

 

 

이름: 게르트 뮐러
출생일: 1945년 11월 3일
국적: 서독
소속팀: FC 바이에른 뮌헨

 

1970년 실버볼에는 월드컵에서만 무려 10골을 득점하며 대회 득점왕에 오른 엄청난 퍼포먼스를 보여준 게르트 뮐러를 선정했다.

뮐러의 소속팀 바이에른 뮌헨은 무관으로 끝났지만 게르트 뮐러 개인의 활약은 대단했는데 33경기에 출전해 38골 9도움을 기록하며 분데스리가 득점왕 및 유러피언 골든슈를 수상하며 키커 분데스리가 시즌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었다.

서독 대표팀에서도 대단한 퍼포먼스를 선보였는데 3.4위전 우루과이전을 제외하고 모두 득점을 기록했으며 우루과이 전에서도 도움을 기록해 10골 3도움을 기록했는데 특히 페루와 불가리아를 상대로는 해트트릭을 기록하며 3위라는 호성적을 냈으며 당연하게도 3개 매체 모두 그를 대회 베스트 일레븐으로 선정했다.

게르트 뮐러는 소파스코어 기준 평균평점 8.48점을 기록하며 펠레를 제치고 대회 최다 평점자로 이름을 남겼으며 프랑스 풋볼에서 유럽 최고의 선수에게 주는 발롱도르를 수상했다.

 

 

1위 골든볼

 

 

 

이름: 펠레
출생일: 1940년 10월 23일
국적: 브라질
소속팀: 산투스 FC


1970년 골든볼에는 월드컵 개인통산 3회 우승을 기록한 펠레를 선정했다.

펠레는 팀의 플레이메이커이자 에이스로 활약하며 조국의 우승에 기여했는데 7경기에 전부 출전해 4골 6도움을 기록했으며 대회 최다 찬스 메이킹 및 최다 도움을 기록하며 경기를 완벽하게 지배했고 특히 결승전에서는 평점 9.3점을 받으며 양 팀을 통틀어 최다 평점을 받았다. 당연하게도 골든볼과 대회 베스트 일레븐을 모두 석권했으며 소파스코어 기준 평균평점 8.33점을 받아 게르트 뮐러 다음으로 높은 평균평점을 받았다.

펠레는 소속팀 산투스에서도 공식전 28경기 11골을 기록했으며 전국리그 MVP를 수상했다. 펠레는 1970년 한 해 동안 국가대표팀과 소속팀에서 공식전과 친선전을 모두 포함해 75경기에 출전해 60골을 기록했다.
 

 

상위 13인 外 최고의 축구선수 최종 노미네이트 17인
 

바비 찰튼 (잉글랜드 /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고든 뱅크스 (잉글랜드 / 스토크 시티)
엔리코 알베르토시 (이탈리아 / 칼리아리)
루이스 쿠비야 (우루과이 / 클루브 나시오날)
바비 무어 (잉글랜드 / 웨스트햄 유나이티드)
리누스 이스라엘 (네덜란드 / 페예노르트)
지아친토 파케티 (이탈리아 / 인테르 밀란)
오베 킨드발 (스웨덴 / 페예노르트)
지미 존스톤 (스코틀랜드 / 셀틱 FC)
라디슬라오 마수르키에비치 (우루과이 / CA 페냐롤)
앨런 볼 (잉글랜드 / 에버튼 FC)
조지 베스트 (북아일랜드 /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드라간 자이치 (유고슬라비아 / 츠르베나 즈베즈다)
오스카르 마스 (아르헨티나 / CA 리버 플레이트)
요한 크루이프 (네덜란드 / AFC 아약스)
아틸리오 안체타 (우루과이 / 클루브 나시오날)
클로두아우두 (브라질 / 산투스 FC)
 


2. 토르난테 선정 1970년 최고의 축구감독

 

골든 바통

 

 


이름: 에른스트 하펠
국적: 오스트리아
소속팀: 페예노르트
주 업적: 1969-70 유러피언 컵 우승 및 1970 인터콘티넨탈컵 우승

1970년 최고의 감독에는 4-3-3 포메이션을 선보이며 효율적인 압박체계를 만들어 페예노르트를 유럽 챔피언 및 세계 챔피언에 올린 하펠을 선정했다.

비록 국내 대회에서는 아약스에게 우승컵을 내줬지만 유러피언 컵 결승에서는 조크 스타인과의 지략 대결에서 완승을 거뒀으며 인터콘티넨탈컵에서도 오프사이드 트랩의 창시자 수벨디아보다 더 절묘한 오프사이드 트랩을 선보이며 그를 무너트리고 챔피언의 자리에 올랐다.

하펠의 전술은 네덜란드의 많은 감독들의 귀감이 되는데 라이벌 팀 감독 미헬스조차도 예외는 아니었다.

 

 

실버 바통

 

 


이름: 마리우 자갈루
국적: 브라질
소속팀: 브라질 축구 국가대표팀 겸 보타포구
주 업적: 1970 멕시코 월드컵 우승


1970년 최고의 감독 2위에는 축구 역사상 최초로 선수와 감독으로 월드컵 우승을 이뤄낸 마리우 자갈루를 선정했다.

자갈루는 친선 경기에서의 부진으로 국민들의 우려를 샀지만 이를 불식시키듯 4-2-4와 4-3-3의 그 사이의 포메이션을 가지고 체코슬로바키아, 루마니아, 잉글랜드, 페루, 우루과이, 이탈리아를 상대로 모두 승리를 거두고 조국의 통산 3회째 월드컵 우승을 이뤄내며 줄리메 컵을 영원히 소장하는데 공헌했다.
 

 

브론즈 바통

 

 

 

이름: 리누스 미헬스
국적: 네덜란드
소속팀: AFC 아약스
주 업적: 1969-70 네덜란드 에레데비시 우승 및 KNVB 컵 우승

1970년 최고의 감독 3위에는 그동안 고집하던 4-2-4 시스템을 버리고 하펠의 4-3-3 시스템을 바탕으로 네덜란드 무대에서 더블을 달성한 미헬스를 선정했다.

하펠의 전술을 참고했다는 한계점에도 불구하고 장군이라 불렸을 정도로 대단한 통솔력을 바탕으로 여러 개성파 선수들을 안정적으로 통솔했으며 유럽 챔피언이자 세계 챔피언을 제치고 소속팀의 더블을 달성한 미헬스를 높게 평가하지 않을 수 없었다.
 

 

상위 3인 外 최고의 축구감독 노미네이트

 

이름: 헬무트 쇤
국적: 서독
소속팀: 서독 축구 국가대표팀
주 업적: 1970 멕시코 월드컵 3위

이름: 제제 모레이라
국적: 브라질
소속팀: 상 파울루 FC
주 업적: 1970 캄페오나투 파울리스타 우승

이름: 헤네스 바이스바일러
국적: 서독
소속팀: 보루시아 묀헨글라트바흐
주 업적: 1969-70 서독 분데스리가 우승

이름: 와싱톤 에차멘디
국적: 우루과이
소속팀: 클루브 나시오날
주 업적: 1970 우루과이 프리메라 디비시온 우승

이름: 조크 스타인
국적: 스코틀랜드
소속팀: 셀틱 FC
주 업적: 1969-70 스코티시 풋볼 리그 우승, 리그컵 우승, 글래스고 컵 우승, 및 유러피언 컵 준우승

이름: 오스발도 수벨디아
국적: 아르헨티나
소속팀: 에스투디안테스
주 업적: 1970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우승

이름: 마닐로 스코피뇨
국적: 이탈리아
소속팀: 칼리아리 칼치오
주 업적: 1969-70 이탈리아 세리에 A 우승

 


3. 토르난테 선정 1970년 축구 특별상

 

토르난테 선정 골든 글러브

 

 

 

이름: 라디슬라오 마수르키에비치
출생일: 1945년 2월 14일
국적: 우루과이
소속팀: CA 페냐롤


1970년 최고의 골키퍼에게 수상하는 골든 글러브의 주인공은 폴란드계 우루과이인 라디슬라오 마수르키에비치를 선정했다.

날렵한 몸놀림으로 대단한 선방을 보여준 마수르키에비치는 페냐롤의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준우승을 이뤄내는데 큰 역할을 했으며 1970 멕시코 월드컵에서도 공격진에서의 전력 누수에도 마수르키에비치를 비롯한 수비진의 뛰어난 역량으로 우루과이는 준결승에 진출할 수 있었다. 이런 활약을 인정받아 대회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었다.

 

 

토르난테 선정 골든 보이

 

 

 

이름: 테오필로 쿠비야스
출생일: 1949년 3월 8일
국적: 페루
소속팀: 알리안사 리마

 

상위 문단의 토르난테 & 레드 아카이브 선정 1970년 최우수 선수 항목 참조

 

 

토르난테 선정 골든 쉴드

 

 

 

이름: 프란츠 베켄바우어
출생일: 1945년 9월 11일
국적: 서독
소속팀: FC 바이에른 뮌헨


상위 문단의 토르난테 & 레드 아카이브 선정 1970년 최우수 선수 항목 참조

 

 

토르난테 선정 골든 렌즈

 

 

 

이름: 펠레
출생일: 1940년 10월 23일
국적: 브라질
소속팀: 산투스 FC


상위 문단의 토르난테 & 레드 아카이브 선정 1969년 최우수 선수 항목 참조

 

 

토르난테 선정 골든 에로우

 

 

 

이름: 게르트 뮐러
출생일: 1945년 11월 3일
국적: 서독
소속팀: FC 바이에른 뮌헨

상위 문단의 토르난테 & 레드 아카이브 선정 1970년 최우수 선수 항목 참조
 

 

토르난테 선정 골든 암밴드

 

 

 

이름: 펠레
출생일: 1940년 10월 23일
국적: 브라질
소속팀: 산투스 FC

 

 

 

 

 

이름: 카를루스 아우베르투
출생일: 1944년 7월 17일
국적: 브라질
소속팀: 산투스 FC

 

젊은 감독 자갈루가 여러 우려를 딛고 셀레상의 우승을 이뤄내는 데는 주장 아우베르투와 실질적인 왕 펠레의 도움이 컸다.

특히 펠레는 그의 대단한 존재감과 강력한 리더십을 바탕으로 플레이메이커만 네 명이 있다고 우려받는 브라질의 공격체계를 확실하게 잡아내는데 큰 공을 세웠으며 수비라인에서는 아우베르투의 강력한 지휘력이 빛났다.

결국 그들의 카리스마가 셀레상의 줄리메 컵 영구소장을 이뤄냈다.

 


4. 토르난테 선정 1970 Team Of The Year

 

 

골키퍼

 

 

 

 

이름: 라디슬라오 마수르키에비치
출생일: 1945년 2월 14일
국적: 우루과이
소속팀: CA 페냐롤

 

상위 문단의 토르난테 & 레드 아카이브 선정 1970년 특별상 문단 골든 글러브 항목 참조

 

 

센터백

 

 

 


이름: 리누스 이스라엘
출생일: 1942년 3월 19일
국적: 네덜란드
소속팀: 페예노르트


오른쪽 센터백에는 페예노르트의 유럽 평정 및 인터콘티넨탈컵 우승을 이뤄내는데 큰 공을 세운 리베로 이스라엘을 선정했다. 견고한 수비력을 바탕으로 철의 리베로라 불린 이스라엘은 수비수였음에도 유러피언 컵 결승전에서 셀틱을 상대로 선제골을 기록하며 우승에 크게 기여했다.

 

 

센터백

 

 

 

 

이름: 아틸리오 안체타
출생일: 1948년 7월 19일
국적: 우루과이
소속팀: 클루브 나시오날


왼쪽 센터백에는 나시오날과 우루과이 대표팀의 수비라인 리더 아틸리오 안체타를 선정했다. 안체타는 뛰어난 수비력을 바탕으로 25경기 18실점을 기록하게 하며 우승에 큰 공을 세웠으며 1970 멕시코 월드컵에서도 뛰어난 수비력을 바탕으로 팀을 준결승에 올렸다. 안체타가 이끄는 우루과이 대표팀의 포백은 캐스트롤 인덱스 선정 베스트 일레븐에 그대로 선정되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

 


라이트백

 

 

 

 

이름: 카를루스 아우베르투
출생일: 1944년 7월 17일
국적: 브라질
소속팀: 산투스 FC


상위 문단의 토르난테 & 레드 아카이브 선정 1970년 특별상 문단 골든 글러브 항목 참조

 

 

레프트백

 

 

 

 

이름: 지아친토 파케티
출생일: 1942년 7월 18일
국적: 이탈리아
소속팀: 인테르 밀란


레프트백으로는 변칙적인 오버래핑과 강력한 피지컬에서 나오는 철벽 수비를 바탕으로 아주리 군단의 월드컵 결승행을 이끈 파케티를 선정했다. 파케티는 출중항 기량과 강력한 리더십으로 조국의 월드컵 결승 진출을 이끌며 ESPN 선정 대회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었다.

 

 

수비형 미드필더

 

 

 

 

이름: 프란츠 베켄바우어
출생일: 1945년 9월 11일
국적: 서독
소속팀: FC 바이에른 뮌헨

 

상위 문단의 토르난테 & 레드 아카이브 선정 1970년 최우수 선수 항목 참조
 

 

공격형 미드필더

 

 

 

 

이름: 펠레
출생일: 1940년 10월 23일
국적: 브라질
소속팀: 산투스 FC

 

상위 문단의 토르난테 & 레드 아카이브 선정 1970년 최우수 선수 항목 참조

 

 

공격형 미드필더

 

 

 

 

이름: 지르송
출생일: 1941년 1월 11일
국적: 브라질
소속팀: 보타포구

상위 문단의 토르난테 & 레드 아카이브 선정 1970년 최우수 선수 항목 참조

 

 

포워드

 

 

 

 

이름: 자이르지뉴
출생일: 1944년 12월 25일
국적: 브라질
소속팀: 보나포구


상위 문단의 토르난테 & 레드 아카이브 선정 1970년 최우수 선수 항목 참조

 

 

포워드

 

 

 

 

이름: 게르트 뮐러
출생일: 1945년 11월 3일
국적: 서독
소속팀: FC 바이에른 뮌헨


상위 문단의 토르난테 & 레드 아카이브 선정 1970년 최우수 선수 항목 참조

 

 

포워드

 

 

 

 

이름: 루이지 리바
출생일: 1944년 11월 7일
국적: 이탈리아
소속팀: 칼리아리 칼치오


상위 문단의 토르난테 & 레드 아카이브 선정 1970년 최우수 선수 항목 참조

 

 

1970 TOTY 베스트 일레븐

 

 

 

 


5. Red Archive 선정 1970년 세계 최고의 축구팀

 

1위 골든 팀

 

 

 

 

페예노르트
 

성적: 1969-70 유러피언 컵 우승 및 1970 인터콘티넨탈컵 우승

네덜란드 국내에서는 라이벌 아약스에게 정규리그와 KNVB컵을 모두 내주었지만 유로피언 컵에서는 에른스트 하펠 감독의 신들린 지략으로 첫 우승을 차지했다. 인터콘티넨탈 컵에서는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3연패라는 위업을 달성한 에스투디안테스를 상대로 접전을 펼쳤고 마침내 승리하며 세계 챔피언의 자리에 올랐다.

 

2위 실버 팀

 

 

 

 

AFC 아약스
 

성적: 1969-70 네덜란드 에레데비시 우승 및 KNVB 컵 우승

비록 지난 시즌의 성적으로 인해 유로피언 컵 본선에 나서지 못하여 국제적으로는 강세를 보여주지 못했지만, 네덜란드 국내에서는 세계 챔피언 페예노르트를 누르고 에레디비시와 KNVB 컵을 모두 우승하며 더블을 달성했다. 특히 리그에서 무려 100 득점의 고지를 밟으며 막강한 화력을 과시하고 훗날 세우게 될 왕조의 서막을 알렸다.

 

 

3위 브론즈 팀

 

 

 

 

칼리아리 칼치오

 

성적: 1969-70 이탈리아 세리에 A 우승

이탈리아의 쟁쟁한 명문들을 제치고 구단 역사상 첫 세리에 A 우승을 차지했다. 리그 30경기에서 17승 11무 2패를 기록하였으며 2위 인테르와의 승점 차이는 4점으로 확실한 차이를 보였다. 특히 이 시즌 칼리아리는 리그에서 불과 11실점만 허용하며 카테나치오의 진수를 보여줬다.

 


6. 평가자 소개

 

1. 토르난테


해당 블로그의 주인이자 F.C.U의 회장으로 축구역사 매니아, 중부 유럽과 남부 유럽 그리고 동부 유럽 축구에 관심이 많다.

선수와 감독을 평가하는 부분에서 전술적 상징성과 최고점에서의 퍼포먼스를 굉장히 중시하는 성향

응원팀: 바이에른 뮌헨, 인테르 밀란, 디나모 키이우
 

 

 

2. Red Archive


F.C.U의 회원으로 축구역사 매니아, 특히 남미 축구에 관심이 많다.

선수와 감독을 평가하는 부분에서 토르난테에 비해 상징성보다는 어빌리티에서 더 섬세하게 평가하는 성향

응원팀: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CA 인데펜디엔테, 아스날
 

 


7. 헌사

 

 

초대 월드컵 때부터 월드컵 우승팀에게 수여하는 줄리메 컵은 3회 우승을 이뤄낸 국가가 영원히 소유하게 된다는 규정이 있었다.

이번 대회를 앞두고는 브라질과 이탈리아, 우루과이에게 자격이 있었다. 그리고 브라질은 대륙의 라이벌 우루과이와 철학적인 라이벌 이탈리아를 준결승과 결승에서 모두 제압하며 줄리메 컵을 영원히 자신들의 것으로 만들었다.

특히 펠레는 브라질이 3번이나 줄리메 컵을 들었을 때 모두 현장에 있었으며 그중 1958 스웨덴 월드컵과 1970 멕시코 월드컵, 두 대회에서는 대회 최고급 활약을 선보였다.

줄리메컵의 영원한 주인이 된 브라질. 그들이 세운 업적은 영원히 추앙받으며 그대들은 영원히 브라질의 자랑으로 남으리.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추천은 힘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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